한국천주교 2백주년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우리 교회의 문을 두드린다고 한다. 도시 교회에는 물밀듯이 밀려오는 예비자들 때문에 즐거운 비명이다. 이 모두가 우리 신자들이 보여준 헌신적인 삶의 결과요 순교 선열들의 피 흘린 보람 아니겠는가!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요 주님께 감사드릴 일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며 민족 복음화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선교의 황금시기를 맞아 농촌교회에서도 깊은 곳에 그물을 던져 보지만 예비자 한 사람 구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실정이다. 7년간 예비를 했다는 어떤 농민은 신자 못지않게 기도문도 줄줄 외고 미사 예절에도 잘 따라온다. 조과(아침 기도)와 만과(저녁 기도)는 물론 연도도 잘 바친다. 왜 세례를 받지 않았느냐고 물으니、체계적으로 교리도 배우지 못했고 주일 날에도 일을 해야 가족의 생계를 꾸려 나가기 때문이란다. 나는 그에게 주님께서 그 어려운 처지를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아실테니、좀 더 준비하여 세례를 받으라고 권했다. 수녀님이 방문하고 보충교리를 해서 이제 그는 신자가 되었다. 지금은 여의도 신앙대회와 시성식에 참여한다고 부푼 꿈에 차 있다. 그에게 내가 붙여준 명칭이 「만년 예비자」다.
영세자 환영식 때 『만년 예비자 드디어 영세하다』로 소개하여 모두가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이제 만년 신자(그리스도인)로서 이 땅에 빛을 비추는 신자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예비자 생활보다 더 어려운 것이 신자생활 아니겠는가? 추위에 있는 많은 이들이 항상 우리를 지켜보고 있으니 말이다. 성당에 두 세 번 밖에 나와 보지 않았다는 어떤 부인은 자신을「나일론 예비자」라고 부른다. 「나일론 신자」라는 말은 있어도「나일론 예비자」란 말은 처음 들어본다. 나일론은 당기면 늘어지고 놓으면 오그라드는 천이다. 생각이 나면 교회에 나오고 바쁘면 안 나온다는 뜻이지만、그녀는 겸손한 마음에서 솔직히 고백한다. 신자도 아닌 그녀가 더구나 교회도 모르는 남편과 함께 살면서 농번기에 교회에 나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일론예비자」라고는 하지만 교회에 나가면 착하게 살고 좋은 일을 해야한다는 근본 가르침은 알고 있는 것 같다. 남편 잘 섬기고 자식 사랑하고 신부님 수녀님 오실 때 밥상이나 들고 다니면 천당 가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그렇다. 농담 섞인 그녀의 말이지만 진실이 담겨있다. 신자라면 온 가족이 믿음과 사랑으로 화목하게 지내야 한다.
집안에서 잘 영글은 열매가 집밖에 나간다고 빈쭉정이가 되겠는가! 화목한 가정생활은 작은 교회의 모습이요 나자렛 성가정의 모습이다. 집안에도 잘하고 집 밖에서도 잘하는 신자들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이다. 가정에서는 자상한 아내、이웃에서는 인정 넘치는 부인으로 산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가정에서는 훌륭한 남편 아버지로서、직장에서는 인간미 넘치는 사회인으로 산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가정에서는 사랑 받는 자녀로 우애 있는 형제로、친구들 사이에는 정직하고 의리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양의 탈을 쓴 늑대가 우글거리는 세상에、늑대의 탈을 썼다 하더라도 한 마리의 양은 될 수 없는가? 어떤 이는 악한 양이 되느니 차라리 순한 늑대가 되는 것이 낫다고 한다. 우리 모두가 한 마리의 순한 양으로 살아갈 때、이 땅에는 믿음과 사랑의 꽃이 피어나고 가는 곳마다 주님의 이름은 빛날 것이다. 『주여! 나일론 예비자라도 좋으니 많이 불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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