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도시를 제치고 달려온 열차가 한폭의 산수화를 펼쳐 준다.
차창밖 멀리 눈 덮힌산들이 반달곰처럼 얼룩져 누워 있다. 적설 사이 사이로 소나무 숲이「독야청청」 버티고 섰다.
그러나 겨울산에 겨울나무하면 아무래도 낙엽져버린 裸木이라야 실감도 나고 격에 어울릴 것 같다.
가을이 가고 칼날같은 시퍼런 겨울이되어 사람들은 괄목의 옷들로 한겹 두겹 둘러대기 시작하면 나무들은 한잎 두잎 오만의 잎새를 땅에 흠뿌린다. 그리고 급기야 나무는 뿌리를 품어 준生命의 은인을 위해서라도 그 충정의 잎새를 아낌없이 날리어 어버이같은 은혜의 大地를 덮는다.
철새처럼 날아 갈수도 없는 붙박이의 겨울나무를 대하는 나의 마음은 수도사의 신아보다도 더 경건하다.
그토록 화려했던 성하의 의상들을 훌훌 벗어 버리고 난 후에야 비로소「하늘나라의 정결한 강설」을 맞이하는 침묵의 허허로운 나무일 때 나는 더욱 구린 마음이다. 모두가 떠나버린 언덕위에 서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개방하는 겨울나무에서 나는 어린이처럼 정직하고 거짓 없는 진실을 또 발견하는 것이다.
저기 죽음의 골짜기에서 있는 외로운 나무에서 바위처럼 흔들리지 않는 忍苦의 敎訓과 영화를 자랑치 않는 겸손을 배운다. 또한 머지 않은 봄날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땅속 깊은 곳에서 기쁨의 꿈을 곱게 다듬고 있을 겨울나무의 希望속에「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마련해 준 구원자」의 모습을 찾게 된다.
이제 현란한 날개로 奇世를 살아가는 여인보다는 정갈한 옷매무새로 凡世를 살아가는 여성이 한결 숭고해 보이듯, 무성한 잎새로 눈 시린 여름나무보다는 숱한 시종들을 떨쳐버리고 적나라하게 서있는 겸허한 겨울나무를 나는 더 사랑하고프다.
「무모한 저항보다는 철저한 수긍을」 자지고 살아가도록 삶의 지혜와 용기를 일깨워 주는 겨울나무의 意味를 두고 두고 길이 새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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