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데서 찾아온 벗, 평화의 사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우리는 인간존엄을 위협하는 이 모든 것 앞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침묵을 지킬 수는 없읍니다』라고 (문화인과의 만남에서) 말하며 순례자로서 4박5일의 순례여정을 마치고 우리 한국의 땅을 떠났다.
5월 3일 이 땅에 첫발을 디뎌 정말 꽉 짜인 일정에 눈코뜰새 없이 바쁜 가운데 사도적 메시지를 선포하고 5월 7일 103위 성인이 탄생한 이 나라를 건강한 모습으로 떠났다.
교황 스스로『지금 이 시각은 한국교회의 역사에 있어 특별한 때입니다』라고 하였듯이 은혜의 때가 틀림없는 이 싯점에 역사적 일대전환을 일으키며 민족사적으로나 교회사적으로 의미깊게 21세기를 향하여, 또 선교3세기를 향하여 활짝 문을 열게끔 했다.
교황은 광주에서 용서란 우리의 가난한 마음보다 더 위대한 행위라고 설파하면서 광주 출신의 아픔을 주는 깊은 상처를 매만지고 화해로 그 아픔을 극복할 것을 당부하고 압박받는 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게 되어 그리스도적 해방의 도구로써 참다운 자유의 표지가 돼야 함을 역설하였다.
또한 대구에서는 그리스도는 오늘도 가난한 이와 앓는 이와 버림받은 이와 짓밟힌 이와 억눌린 이와 죄인들과 가까이 계시다고 말하며 아낌없는 아량과 용기로써 세상의 구원을 위해 몸을 바치도록 권고했던 것이다.
역시 부산에서는 오늘의 사회는 가치 질서가 늘 존중돼야 함에도 일을 마치 상품처럼 다루기 일쑤라고 경고하며 무관심과 오해와 시달림 앞에서 근로자와 농민이 그들의 권익을 위해 투신하는 그리스도 신자로서 십자가를 져왔으나 더욱 복음의 말씀에서 용기를 얻어 계속 매진하기를 바라고 있음을 밝혔다.
또한 교황은 특별히 소록도로 순례의 발길을 돌려 환자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에게 희망에서 위안과 힘을 찾게 하고 따뜻한 강복을 주며 그 나환자들을 향해 사랑하는 마음을 진심으로 열었다.
그뿐 아니라 어린이를 위해 특별히 메시지를 보내며 한국의 소년소녀 하나하나에게 한결같이 『내 사랑을 드립니다』고 따뜻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 밖에 신학생 문화인 수도자 성직자 재야인사들 타종교의 지도자들과 개신교의 지도자들을 만났고 또한 사목회의에 참석했고 그리고 또 명동성당을 참배하였다.
그리하여 화해 나눔 증거 등 세 주제를 중심으로 평화에의 복음 메시지를 선포하여 시성식을 정점으로 이 땅에 그리스도의 빛을 밝힘으로써 희망을 제시하였을뿐 아니라 더욱 이 민족의 하느님 백성이 은혜의 빛이 되게끔 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목적 방문의 역사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좀 살펴봐야 하겠다. 그리하여 현저하게 드러난 역사적 현상을 보건대 첫째 교황의 사목적 방문은 우리 민족에게 화해 및 사랑의 사도로서의 참 모습이 어떤 것인지 알게끔 하였으며 둘째 분단 분열 불신 불화의 시대적 민족적 상황에서 우리 민족이 서로 화해하고 사랑하는 위대한 민족의 상징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깊게 하고 그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였으며 셋째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억눌린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었으며 넷째 교회가 있을 곳이 어디인지를 명백히 하였으며 다섯째 평화롭고 정의로운 사회를 이룩하려는 한국민족의 의지에 교회가 협조하고 기여하여야 함을 확고히 하였고 여섯째 일반신도들로 하여금 순교선열의 후예로서 그 순교정신에 바탕한 책임과 사명을 깊이 깨닫게 하였으며 일곱째 한국 교회의 그 구성원들로 하여금 문화순응과 토착화에 애쓰도록 촉진하였으며 여덟째 이 땅의 전체 하느님 백성의 신앙을 제대로 심화토록 하였다는 점을 주목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여덟까지 점으로 미루어 봐서 교회사적으로 첫째 서구중심의 교회로부터『세계의 교회』에로 비약하는 제3교회에로의 문을 열었으며 둘째 한국교회의 보편교회 및 아시아 교회에 있어서의 사목적 선교적 책임성을 제고하였으며 셋째 남북한분단의 현실을 타파해야 할 교회의 복음적 입장을 제시함으로써 민족사와의 맥락 안에 교회를 위치시켰다는데 의미를 부여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 바이다.
또한 민족사적으로 첫째 역사가운데서 役事하시는 하느님의 은혜를 민족사 안에서 발견케 했으며 둘째 민족의 역사 안에서의 한국교회의 자리를 정립케 하여 한 민족과 함께 순례의 길을 걸어야 할 교회를 재발견케 했을 뿐 아니라 구세사 안에서 민족사를 발견케 했다는데 큰 의미를 부여해야 할 것으로 믿는다.
평화의 사도로서의 순례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다녀갔다. 2백주년의 기념행사의 일환이었던 교황의 사목적 방문은 잘 끝났으나 우리의 2백주년은 21세기를 향하여 또 선교 3세기를 향하여 재출발하여야 할 시발점에 서 있다. 끝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교회의 지도자와 모든 교회 공동체구성원들은 새로운 출발의 순간에 있어 새로운 결단으로 영성을 심화, 신앙의 쇄신을 다짐하여 선교 3세기에의 순례의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 가난한 사람ㆍ억울한 사람ㆍ병든 사람ㆍ젊은이들과 함께 공동의 결단을 내리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쇄신과 희망의 때이기도 한 경축의 이해를 맞아 다른 사도들이 바오로에게 마저 명심시켰던 요청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더러 가난한 사람들을 기억해 달라는 것』(갈라디아2ㆍ10) 이 그것입니다.
(5월 3일 한국주교단에 대한 교황의 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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