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야 그 친구는 우스개 삼아 그런 투로 이야기를 늘어놓았겠지만 제 정신으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하면 할수록 이 세태를 꼬집고 풍자하는 것 같아 개운치가 않다. 교통사고로 입원한 직장동료의 병문안을 다녀온 그 친구는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그 특유의 우스꽝스러운 몸짓까지 섞어가면서 다음과 같이 들려주었다. 『본네뜨가 많이 상했더군 라이트가 하나 깨지고, 오른쪽 깜박이가 듣지 않더라. 쪼인트가 망가져 WC 다니기가 곤란하고…라지에타는 그래도 괜찮아 물은 새지 않고. 수리하려면 한 서너달 걸릴걸. 견적서가 꽤 많이 나왔겠던데』
처음에는 무슨 소린가 하고 의아해 하던 사람도 나중에는 그 말뜻을 알아채고 박장대소를 하였지만 그때는 왜 눈물이 찔끔 나도록 우스웠는지 모르겠다. 자동차 구조나 부품에 대해 조금만 상식이 있어도 위의 말을 쉽게 알아들을 것이다. 그리고 인체의 부분을 차 부속으로 대체시켜 뇌까리는 그 사람의 기발한 재치(?)에 우선 감탄할 것이다.
더 말할 나위 없이 본네뜨는 사람의 얼굴을 이름이요, 라이트는 눈이다. 깜박이는 차의 진행방향을 알리는 신호인데 깜박이 고장은 눈을 감고 뜰 수 없음을 말함이다. 쪼인트는 무릎 근처를 의미하며, 라지에타는 방광이요, 견적서는 입원비를 뜻한단다. 그냥 웃고 흘려버리기에는 너무 억울한 기분이 든다. 마치 길을 가다 교통사고로 내팽개쳐져 있는 자동차의 몰골을 만나는 것 같아 우리 모습이 너무도 무참하다. 우리들 기분이 이럴진대 하느님의 기분은 과연 어떠하실까? 우리의 문화유산 중에 재상의 자리쯤 차지하고 있는 교려청자나 이조백자를 우리는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고 있다. 애지중지하는 정도가 유물에도 이러할진대 하느님께서 구슬땀을 흘려가면서 빚은 우리의 귀한 모습 하나하나가 어찌 자동차 부품으로 달리 불려 져도 이상하지 않단 말인가!
물론 회복시킬 수 없는 장기를 인공장기로 대체하여 사람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과학의 도움을 모르는 바 아니나 이 방면의 발전이 오기 전에 먼저 알아 명심해야 할 일이 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 존엄성에 대한 새로운 경외심과 의식의 재무장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생명이 인식되지 않고 과학으로만 해석되어야 하는 생명체라면 제 기능을 잃은 장기 하나 차 부속 갈아 끼우듯 해본들 누가 비참해 하겠는가. 하느님 사랑 안에서 잉태되지 않는 모든 생명의 탄생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또한 가장 위험스런 교만이다.
성경에 기록된 인간 죄악 편에서 가장 지우고 싶은 것 중 하나인 바벨탑을 또 다시 쌓고 있는 현세의 청맹을 깨우쳐 주시기 위해 육순의 교황님도 땅 끝까지 뛰고 계신다. 아무리 우주를 제집 드나들듯이 한다고 해도 공중에 나는 새 만큼도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우리들이라면 달리 로보트를 만들 까닭이 있을 수 없다. 우리 자신이 로보트가 되면 그뿐이니까 말이다.
하느님의 구슬 땀 한 방울도 해득하지 못하면서 태아가 된 심정으로「엄마 방 아기의 꿈」졸시한 수를 낭송해 본다.
초유빛 같은 살결/행여 흠 하나 질까/비단옷 입혀 주고/목숨 나뉘는 신비/첫울음 우렁찰 날을/그려보며 살아요.
그동안 안동교구 점촌본당 주임이신 오성백 신부님께서 수고해주셨습니다. 이번 호부터는 시조시인이며 김해본당 신자인 김영수씨께서 집필해 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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