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는 다 이르지 못할 사랑이 있다。그래서 언어의 빈곤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당황하게 한다。참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그들만이 아는 어떤 몸짓、특수한 암호、알았음을 나타내는 미소를 가진다。그리고 이런 것들이 비록 그들만의 비밀은 아닐지라도 이는 그들 공동체의 구성원들만이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음은 분명하다。
교회도 마찬가지다。교회는 그 자체가 하나의 신앙공동체이며 사랑의 공동체이다。이 공동체에서도 그들만이 통하는 깊은 내면의 미소가 있다。그것은 살아있는 유기체가 소유하는 친교이며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통하는 몸짓이요 이해하는 사람들의 조용한 미소이다。
가톨릭교회에서의 이 신비는 그리스도로부터 왔고 그리스도 때문에 있는 것이다。그래서 이는 분명히 우리를 더욱 풍요롭게 하고 더욱 아름답게 하고 있다。우리는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흠숭)한다。그래서 그분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도 사랑(상경)할 수밖에 없다。『당신을 사랑합니다。그러나 당신의 어머니 마리아는 외면합니다』라고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예수의 십자가 밑에는 그의 어머니와 십자가 아래 마지막 남은 몇 사람이 서 있었다。『예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서 있는 사랑하는 제자를 보시고 먼저 어머니에게「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하시고 그 제자에게는「이분이 네 어머니시다」하고 말씀하셨다。이때부터 그 제자는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다』(요한 19ㆍ26~27)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이 유언을 따라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신「요한」은 참 크리스찬의 모범이 아닐 수 없다。이 시대의 탁월한 크리스찬 중의 한사람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한국방문중에 특별히 사제단과 함께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기도하셨다。「안젤루스」의 종소리와 함께「마니피깟」이 울려 퍼질 때 충격처럼 느껴오던 감동은 참 크리스찬의 몸짓이며 미소가 아니던가!
신앙의 대상은 이성을 초월하는 진리이다。그 진리는 사도들의 신앙고백인「신경」에 정의되어 있다。모든 크리스찬은 그 신앙을 함께 고백하며 증거하여야 한다。이를 위해서는 교회 안에 영속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주신 하느님의 말씀에 의존하여야만 한다。
그리스도는 말씀이요、말씀은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천사는 마리아의 집우로 들어가『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하고 인사』(루까 1ㆍ 28)하였다。그리고『마리아、너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고 그 복되심을 찬탄하였다。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손위인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향해『주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 주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루까 1ㆍ43)하며 영접하였다。마리아의 호칭은 이미 주님의 어머니시다。사람들의 불효가 주님의 어머니를 외람되이 따질 무렵 교회는「에페소」에서 명쾌히「주님의 거룩한 어머니 마리아」를 재확인하였다。그 밤을 지샌 횃불행렬의 기도는 주님께 드린 사도 요한의 모범을 따른 크리스찬들의 효도의 재확인임을 우리는 잊지 못한다。
구세주의 어머니를 자신의 어머니로 집에 모신 사도 요한의 효도는 크리스찬의 깊은 신심 안에 참 크리스찬이라면 알아듣는 은혜로운 호칭으로 마리아는 지금도 불리우고 계신다。가시밭의 백합화、온전히 결백한 땅、죽음을 이긴 생명의 딸、바다의 별 하자 없으신 어머니、평화의 모후이 천상 어머니께 드리는 영예로운 칭호는 끝이 없다。
성모 마리아께 드리는 이러한 찬사는 다만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효성 지극한 크리스찬의 진정한 신심에서 우러나온 것들이니 마리아는 당연히 그 받을 바 찬미를 받으시는 것이다。
은총은 자연적 작용을 억압하지 않는다。가장 자연스러운 것은 가장 은혜로운 것이다。우리는 이상스러운 것보다는 오히려 습리적인 것을 취하고 우리 자신 안에 지나치게 캐묻는 경향보다는 무한하신 분께 영광을 드리며 침묵을 택할 줄을 알아야 하겠다。
사도 바오로는 테살로니카 신도들에게『성령의 감동을 받아 전하는 말을 멸시하지 마십시오。모든 것을 시험해보고 좋은 것을 꼭 붙드십시오』(I 테살로니카 5ㆍ20)하고 권유하며 또 필립비인들에게는『형제여러분、끝으로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여러분은 무엇이든지 참된 것과 고상한 것과 옳은 것과 순결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영예로운 것과 칭찬받을 만한 것들을 마음속에 품으십시오』(필립비 4ㆍ8)라고 일러주었다。마리아께 대한 연구와 신심에도 이러한 원칙을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이제 성모의 성월을 보내며 어머니의 자애를 느끼지 못하는 형제들을 바라보며 더욱 못다한 효도를 뉘우친다。자애로우신 어머니、당신의 모성에 갈라진 형제들을 불러 모아 주님의 영광이 들어나게 빌어주소서。모든 크리스찬의 언어의 빈곤을 넘어서서 사랑의 몸짓과 미소가 가슴마다에 공명하는 은총의 희열을 함께 나눌 수 있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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