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여느 목청보다 싱그럽고 결고운 목청으로 자신의 탄생을 알린다。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아기가 어디서 왔을까하며 자꾸 신기해할 것이고 하느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들은 먼저 감사의 기도를 드릴 것이다。이 귀엽고 사랑스런 아기에게 무슨 이름이 어울릴까? 부모는 고운 말이란 말은 다 불러보며 한참 기쁠 것이다。
따스한 품속에서 젖내를 맡으며 자라나는 아기는 어느새 자기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알아챈다。아기의 새싹 같은 귀가 엄마의 햇살 같은 목소리로 맨 처음 열린다는 사실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부르면 고 앙증스러운 눈동자로 빤히 쳐다보는 아기의 얼굴을 어떠한 말로써도 표현할 길이 없다。
그렇게 태어나 귀여웠듯이 영세를 통해 새로 태어나는 우리도 하느님 보시기엔 귀여운 젖동인지 모르겠다。나는 늦게야 김베드로 신부님의 낚시에 걸려 천주교에 입교、영명 첫돐을 맞으면서 교우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축하를 받아본 일이 있었다. 그것을 감추느라고『눈에 고춧가루가 들어갔나 보다』하며 어물거렸지만 영명축일을 기억하고 축하해 주고 다정히 불러주는 일이야말로 공동체 생활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내 딴에는 이 같이 교우들에게도 기쁨을 드리기 위하여 영명을 외워 부르기에 열심하였지만 모두 외국명이라 잊어먹기가 일쑤였다。하는 수 없어 기발한(?)방법을 하나 생각해보았더니 이를테면 까타리나를 카스테라로、도미니까를 하모니카로、꼴롬바를 콜롬비아로、펠레치따를 펠레로、유스띠나를 티나크랙카로 우선 외운다거나 모습에서 본따 안경을 쓰고 있어 유리안나로、스타 중에 스타「모데스타」로、사실은 그렇지 않지만 별스러워 벨라뎃따로、그리고 음정이 물결치듯 한다고 하여 임파 아닌 음파로…이렇게 골육지책으로 외우고보면 까먹지 않아 좋긴 좋은데 행여나 성인의 완덕을 손상시키는 우를 범할 것 같아 두렵고、본당 형제자매들께는 미안한 마음 숨길 수 없다。그러나 이제는 외국의 성인명만을 외우기에 진땀을 흘리지 않아도 좋은 일이 있으니 다름 아닌 우리 선조들의 성인탄생! 가톨릭역사상 유례없는 교황청 밖의 103위 성인선언식이 이 땅에서 엄숙히 진행되고 있을 때 우리들의 감격은 어떠하였는가。아아、성인의 나라 조국이여! 아아、성인의 나라 한국의 천주교여! 너무나 벅찬 감동에 목이 메여 어쩔줄 모르던 우리 교우들。영광의 오늘이 있기까지 주님을 증거한 그분들의 핏방울과 땀방울 너무나 알고 사무쳤기에 우리들은 기뻐서기뻐서 울 수밖에 없었다。반만년 오랜 역사를 견디어 오면서 억눌린 마음을 활짝 열고 세계만방을 향하여 이처럼 자랑스럽게 소리쳐 본적이 있는가! 정말 있었는가! 하느님은 이 땅을 성인을 허락하셨으며 교황님은 또 이 민족을 얼마나 사랑하시기에 희망과 평화와 믿음을 이렇게도 크고 깊게 심어주시고 가셨는가! 「순교자의 땅、순교자의 땅」하시며 이 땅에 친구하시던 경건한 모습을 우리는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선조들의 성인명을 가질 수 있고 조금은 불경스러운 방법까지 동원하지 않더라도 우리 귀에 친숙한 우리말 세례명을 부르며 자랑스럽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기쁘고 신나는 일인가! 신나는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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