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 주님을 뵙기 위해 그 이튿날이면 어김없이 등산을 가시는 본당 신부님을 따라 나섰다. 신어산은 그리 깊지는 않으나 8폭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어 늘 이내가 감도는 보라빛 산이다. 중턱부터 경사가 급한 바윗골을 그래도 군말 없이 올랐던 것은 주님의 부활을 맞이하던 전날의 기쁨 탓이었을까, 아니면 처음 따라 나서는 등산에 부적격자란 딱지를 받으면 이담에 착석치 못한다는 경고에 비장한 각오를 한 덕분이었을까. 거북이 걸음이래도 핀잔주는 이 없어 좋은 산길에 우리들은 짬짬이 쉬면서 봄산을 눈여겨보았다. 혹시나 주님께서 나그네로 나타나시면『이제 날도 저물어 저녁이 다 되었으니 여기서 우리와 함께 묵어가십시오』하고 간청 드릴 마음으로. 그러나 산은 생명의 숨소리로 가득할 뿐 인기척은 없었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을 견디느라고 수목들은 얼마나 고생을 하였는지, 허약한 관목들은 혹한을 간신히 이겨낸 반쯤 언 몸으로 겨우 눈을 뜨고, 덩치가 크고 실한 나무들은 피부가 많이 상해보였다. 겨울이 적막하고 길면 길수록 봄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간절해지는 법. 수목들도 사무치는 마음이 저같아 쫑긋쫑긋 귀를 세우는 것인가. 연초록 새싹들이 두꺼운 껍질을 비집고 나와 주위가 낯선 듯 두리번거린다. 저 많은 잎들이 어디에 꼭꼭 숨어 있다가 봄의 입김에 고개를 내밀고 눈웃음 치고 있는 것일까? 거칠은 바람 속에 고막이 멍멍할 때는 잿빛 밖에 보이지 않더니 도대체 어디서 무수히 많은 생명들이 몰려와 온산을 에워싸고 새들은 기쁨의 노래를 멈출 줄 모르는가. 참 신비롭다! 참 평화롭다.
종달새같이 비죵비죵 노래하지 않고는 못 견딜 우리들의 기분을 신부님은 어떻게 알아채셨는지 진달래 능선길 한복이 잘 어울릴 진달래 사잇길을 한참 길잡으시더니 임시 무대가 될 만한 곳에 걸음을 멈추게 하셨다. 누가 시키면 오히려 자라 모가지같이 쏘옥 들어가 좀처럼 나오지 않던 노래이건만 그날은 절로절로 흥겨워지고, 두 분 수녀님의 노래 식탁이 그렇게 풍성할 줄이야. 동요에서 출발하여 성가 가곡 심지어 흘러간 가요까지 열창하던 우리들의 신명에 산의 식구들도 갈채를 보냈을 것이다.
마음 밑바닥에 흥건히 고이는 기쁨이라는 것. 사랑이라는 것. 평화로움이라는 것. 이 모든 것을 관념적인 것이 아닌 실체로 맛보게 주님께선 우리들을 봄산에 불러 주셨나 보다. 참으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은혜로운 이 강산이다. 사순절은 사순절대로 이 강산은 빈한한 마음을 가질 줄 알고 부활절은 부활절대로 생명의 충만함을 보여줄 줄 안다.
연초록 산의 눈빛은
부활 후 더욱 가득해
빈 무덤 내 가슴을
햇살로 채워 주시는
임이여, 만산의 평화
저희 불러 주시나이까?
무시로 천둥은 울어
우리네 붉은 땅에
아이들 눈빛 같은
새싹을 키우시는
임이여, 만산의 사랑
저희 불러 주시나이까?
새싹같이 여린 우리의 사랑과 평화가 푸른 숲이 되어 너울거리는 모양을 보시고야 승천하시는 주님의 보살핌에 자꾸 눈물겨워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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