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교황성하의 방한은 초세기적인 동시에 개국 이래 처음 맞이하는 역사를 초월한 최대경사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김포공항 트랩에서 내리자마자 기라성 같은 주교단들과 수천에 이르는 내외 저명인사들의 영접을 받으면서 하느님의 축복이 이 나라에 내리도록 땅 위에 정중하게 친구(親口)했다.
장시간에 걸친 복잡하고도 거창한 모든 환영절차를 끝낸 뒤에 교황 성하의 전용차는 공항 광장을 빠져나와서 연도에 구름처럼 몰려든 환영인파의 꽃밭을 서서히 누비며 시종일관 미소로 답례하면서 절두산으로 향했다. 이날 교황성하는 청와대를 예방했고 혜화동 대신학교에서 신학생 및 주교단과 만났다.
도착한 첫날부터 4개 행사를 치뤄낸 교황성하께서는 4박5일간의 방한일정 중 촌각의 휴식도 취할 겨를이 없었다.
방한 제2일째인 5월 4일에는 우선 광주로 가서 무등경기장에서 성세성사와 견진성사를 집전, 운집한 7만여 군중들의 열광적인 환호와 흥분은 절정에 이르렀다.
또 소목도로 찾아가서 세상에서 버림받은 나환자들을 일일이 돌봐주었고 특히 몸소 2만5천불을 선물해가면서 그늘진 골짜기에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주었다.
방한 제3일째인 다음날은 대구와 부산으로 가서 시민들의 열광적인 영접은 물론이고 특히 노동자와 농어민들을 접견, 물가의 상승을 뒤따를 수 없는 저소득에 계속 시달림을 받고 있는 그들의 아픈 가슴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셨고 억눌린 그들의 사기도 북돋워주었다.
그분이 만난 사람들의 범위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불교ㆍ유교ㆍ개신교ㆍ천도교 등 타종교 지도자들과 접촉을 가졌다. 그들은 사랑과 자비와 인자의 덕대를 아끼고 않았다. 이 자리에서 어떤 스님은 감사의 선물로 아끼고 사랑해오던 소중한 염주를 기꺼이 교황께 선물로 드렸다.
그밖에도 교황성하는 야당정치인ㆍ문인ㆍ법조인들과도 따뜻한 접촉을 가졌다.
5월 6일 여의도광장에서는 공전절후(空前絶後)의 큰 모임이 베풀어졌다. 1백만이 넘는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에서 한국천주교회 2백주년기념 신앙대회와 1백3위 우리 복자들의 시성식이 성대하게 거행됐다. 1백3위 성인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는 감격적인 사실과「바티깐」이 아닌 외지에서 시성식을 갖는다는 것은 세계에서 한국이 처음이었다.
이날 예식은 장장 3시간에 걸쳐 미상예절로 진행됐는데, 1백만 인파는 교황기와 태극기를 흔들면서 천지가 진동하도록『교황성하 만세!』를 계속 외쳤고 교황 성하는 계속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흔들어 답례했다.
미사가 끝난 뒤에도 교황성하는 자리를 떠날 줄을 모르고 열광하는 군중들과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감격과 흥분의 도가니 속에서 한참동안이나 서성거리다가 단상에서 내려오셨다.
더구나 그분은 방한을 위해서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미사를 우리말로 집전하셨으니 놀라운 일일뿐 아니라 그분이 평소에 우리나라를 얼마나 사랑하고 계신가 하는 것도 가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천주교를 이 나라에 끌어들이기 위해 만신창이가 되도록 필사의 노력을 기울여온 이벽·이승훈 등 신앙선조22위가 아직 복자위에 오르지 않아 너무 유감스럽고 안타깝다.
그분들이 복자의 반열을 거쳐서 어서 속히 성인대열에 오르도록 1백70만 형제들의 공동체는 가일층 결속을 강화해서 강인한 노력과 끊임없는 기도와 성모 마리아께 전달을 구하는 간절한 호소를 매일 의무화하고 생활화해야만 되겠다.
나는 오늘날까지 살아오면서 참된 인물을 두분 보았다. 한분은 이번에 내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이고 또 한분은 옛날 일제하 내 고향인 평양에서 본바있는 일본의 성자 가가와 도요히꼬(賀川豊彦)씨였다.
그분들은 다 국경이 없는 분들이다. 그분들은 어디를 가나 뿌리 깊은 사랑을 심어주고 강한 인상을 마음 안에 새겨주고 하느님의 사랑을 크게 드러내 주는 분들이다.
지구상 10억 인구 중에서 몇몇 손꼽히는 이런 거인을 내 생애에 두번씩이나 볼 수 있었다는 영광도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이라고 생각하며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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