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짧은 신앙생활동안 한 분 신부님과 두 분의 수녀님을 보내면서도 마음의 아픔이 이러할진대 그 숱한 석별의 정을 본당에서만 20여년 견뎌야했던 정 선생님 같은 구교우분들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주님께서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한다고 엄한 꾸중을 하시겠지만 나는 아직도 사람의 일에 많이 연연하는 신앙 초년생이다.
젊은 박 수녀님이 가시던 날은 그래도 꽃이라면 패랭이꽃 같고 노래라면 낙원의 개울물소리 같다는 뜻의 시조 한수를 즉흥적으로 읊으면서 종장에는 마지막 드릴 노래는「떠날 때는 말없이」라 하여 그 울적한 마음들을 조금은 바꾸려 하였지만 할머니 수녀님이 가시던 날은 그조차 말 못하고 모두들 훌쩍거리고만 있었다. 가시는 곳이 멀어서 다시 만나지 못할 것 같은 심정에서 그랬고 철이 겨울이라 이 추운 길을 어찌 가실까하는 염려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추위나 피하시라고 마련해 준 두툼한 내의를 가난한 교우를 불러 몰래주고 가신 사실을 늦게야 안 우리는 또한번 울먹일 수밖에 없었다.
봉직하시는 곳에 한번은 다녀와야겠다고 마음들은 먹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미루어 오다가 성전건립 기공식을 며칠 앞둔 날에야 부랴부랴 떠나게 되었다. 아카시아꽃 향기가 차창으로 솔솔 들어오는 5월, 성모님께 드리는 이 산천의 꿀과 향기를 우리도 벌나비같이 따먹으면서 기쁨으로 한껏 달리고 있었다. 일러주신대로 길을 찾아 주평성당에 당도하였을 때 누구 입에선가 첫 탄성이 터져 나왔다. 환영하는 벽보를 발견한 까닭이다. 미소한 우리를 맞아들이는 세수녀님의 지극하신 정성과 기쁨 앞에 우리는 고마움으로 어쩔 줄 몰라 했다.
주님께서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모습을 보여 깨우쳐 주시려는 듯이 성당문에 붙여놓기를『대환영! 김해 우리형제자매님들! 어서오세요. 수고많으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한그루 꽃나무까지도 이 기쁨에 참여시켜 환영사를 걸어놓으시기를『환영! 환영! 환영! 환영! 환영! 환영!』, 마지막 한장은 수녀원 대문에 붙여 같이 계시는 두분 수녀님의 정성과 기쁨도 함께 하시는 뜻으로 『대환영! 김해 우리 친구님들 어서오십쇼. 어서오십쇼.』두루 모르긴 해도 가슴의 진한 사랑으로 환영하는 이와 같은 글을 일찍 본 일이 없다. 장황하고 미련한 말들이야 많지만 소박한 진심의 말은 갈수록 고사되어가는 세상이다.
아이들 다 키워놓고 떠나가시는 어버이같이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들의 어린 신앙을 길러주신 후에야 하늘로 오르시고 그것도 염려스러워 다른 협조자를 보내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성신강림대축일」을 맞이하면서 나는 과연 몇 잠을 설쳐가며 마음을 준비하고 있었는가. 또한 내 마음의 꽃나무에 어떤 벽보를 붙여 전 교우들이 함께 환영하는 느낌표를 찍어 보았는가. 보잘것없는 우리들을 환영하던 글에도 무려 느낌표가 24개나 찍혀 있어 몸둘바를 모르게 하셨다. 성신을 맞이하는 환영사에는 이 우주를 들어 느낌표로 놓으면 족할까? 마음과 몸을 다하여 주 하느님을 섬기라는 말씀을 미처 따르지 못하는 초년생은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들 가슴 속에 가득 채워져 있던 느낌표는 어느덧 음표로 바뀌어 성가로 힘차고 기쁘게 흘러넘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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