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계신 할머니들, 회원을 모집합니다. 들어 주시겠어요?』하고 느닷없이 여쭈었더니『그러믄요, 신부님이 하시는 일인데 하야다요 하시기에 나는 죽으러 갈 사람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우리들이 다 참여해도 부족합니다. 적어도 한 만명은 넘어야 될 것 같은데…』하고나서 분위기를 살피니 눈들이 둥그래지고 어안이 벙벙해서들! 나는 계속해서『대원군시대의 사회보다 더 지독한 분위기이니까 더 많은 사람이 죽어야 하고 더 열심히 죽어야합니다. 어짜피 죽을 우리,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선택할 연령이고 바로 이 시기입니다. 늙어서 자식들의 눈치를 보면서 자식에게 응석을 부리며 살아서 뭐합니까? 자녀를 후손들에게 강한 신념의 표본을 보이기 위해 우리 모두 죽으러 갑시다. 자 그럼 저는 우선 손을 들겠습니다. 원하시는 분은 손을 들어 주십시오』『잠깐만 신부님 어디로 죽으로 가는지를 알아야 하지요』하고 한 할머니가 용감하고 다급하게 긴급동의를 해왔다. 『말씀 드리지요. 남북통일을 언제 기대 합니까. 보세요 우리들이 피난 온지 30년이 넘었다구요. 외국 열강들이, 우호국가들이, 정치인들이 통일을 해주나 하고 기대했으나 다 헛거였읍니다. 오늘의 남한천주교는 통일을 염원하는 기도형식의 연극만 연출하고 있으니 되겠어요? 우리 할머니들의 죽음을 하느님께 바치고 국가에 바치고 우리 자손들을 위해 값지게 바치려면 저 북한에 수단껏 넘어가서 공산국인 우리 친척의 자녀들에게「얘들아 김일성도 사람이란다. 왜 그 사람에게 인생 모두를 바치느냐 하느님께 우리 생명을 받았으니 하느님께 김일성도 자기생명을 바쳐야 하느니라. 너희 모두들 정신 좀 차려라」는 한마디만 하시고 죽어 가면 됩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이렇게 만번을 거듭하면 세계의 매스컴은 결코 가만있지 않을겁니다』
평양교구 신우회 월례미사를 나는 81년 82년 2년간을 매달 빠짐없이 드릴 때 25~30명만 계속 참여하는 할머니들을 볼 때 망각이라는 것이 무섭게도 느껴왔다. 그래서 83년 1월부터는 숫자는 적더라도 후손에게 무엇인가 남겨 보자는 뜻으로「평양교구 주교좌성당 건립기금」을 단돈 10원이라도 좋으니 매달 모으기 시작하였다. 첫 달인 1원엔 만 7천7백원을 입금하며 이 통장은 통일될 때까지 절대로 찾을 수 없는 통장이라고 미사 때 주장하였다.
84년 5월 현재 97만 8천9백32원이 되었다. 더 일찍 시작하지 못한 것을 애석하게 생각하였다. 그 해 얼마 안가서 이산가족 찾기가 시작될 때에, 교회 안에 북한 선교부가 조직될 때에는 우리 할머님들은 먼저 시작한 평양교구 주교좌성당 건립기급 통장을 제단에 올려놓고 미사를 참여하며, 미사참여의 은혜를 완전히 북한으로 보내기 위해 북쪽을 향하여 평양교구기도문을 바치던 때였다.
그러나 인생은 약하다. 오늘을 살아야 한다는 집착은 할머니들에게도 강한 것, 『신부님 북한에 가지 마세요. 그 놈들이 어떤 놈들인데』『신부님 우리 죽으러 안 갈래요』『신부님 이젠 죽으러 가겠다는 말 입 밖에도 내지 말라우요』 하시는 생의 애착은 역시 하느님이 다 살게끔 해주신 선물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시조시인인 김영수씨께서 수고해 주셨습니다. 이번 호부터는 서울 영등포본당 주임이신 이기정 신부께서 집필해 주시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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