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특히 나같이 보잘것없고 나약한 인간까지 성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놀라운 은총의 말씀이다.
우리 103위 순교 성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거듭 느끼는 것은 죽으면서까지 하느님을 믿고 배반하지 않은 거룩한 신심의 불꽃에 대한 부러움이다.
신앙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우리로서는 예전처럼 치명 순교할 기회는 잘 없지만 일상생활 가운데 믿음으로 순(殉)하는 게 도리가 아니까?
「온유와 겸손」으로.
고통은 물론 실패와 적의、멸시까지를 기꺼이 수용할 수 있는 온유를 지니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 시대 자체가 고속화되면서 거의 너 나 없이 신경질적인 이기주의에 젖어있기 때문에 항상 신경을 칼날처럼 곤두세우고 살아야 남에게 속지 않고 손해 안보고 살 수 있다.
또 여건이 좋고 하고자 하는 일이 잘되는 사람은 자만심의 노예가 되어 오만의 코를 세우기 쉽고 실패와 좌절、가난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물질이 가난한 사람은 자칫 자비(自卑)와 적의 비탄에 빠져 스스로의 심성을 비천에 떨어뜨릴 위험이 큰 것이다.
우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은 남을 자기의 자로 재어 길다 짧다 좋다 나쁘다하고 비판하기 쉽다. 반면 열등한 처지에 있는 사람은 남을 원망하고 자신의 불운을 슬퍼하다가 성령을 거역하는 절망에 빠지기 첩경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의 인간적인 자、판단도 하느님의 원의에 합당한 것이 될 수 없다.
마땅히 거룩해야 하는 우리 그리스도 공동체의 모든 형제자매들 가운데「거룩」과 먼 독선과 아집에 사로잡힌 영혼이 얼마나 많은가.
천국 가는 것은 맡아 놓았다고 안심하고 있는 사이 자기도 모르게 「거룩함」과 「사랑」에서 먼 지경을 헤매는 자신의 영혼 관리를 알퐁소 성인의 지언(至言)과 같이 철저히 할일이다.
인간적인 자애(自愛)가 아닌 자기 사랑-하느님이 원하시는 바의 자녀-을 제대로 하여 자신을 정점에 올려놓을 수 있는 꾸준하고 폭넓은 덕을 지닌 사람만이 이웃 사랑도 높낮이를 안 가리고 가까움과 먼 것을 초월해서 할 수 있을 것이다.
성녀 마리아 도미니까 마자렐로께서는 즐겨 거느린 어린 양들에게『우리 모두 성녀가 됩시다』라고 경쾌하게 말했다는데 이 말만으로도 아름다운 음악과 같은 위안과 힘이 된다.
온유와 겸손의 덕이 영양 좋은 나무처럼 자라가는 하루하루를 우리가 살아낸다면 지상에서 이미 천국의 복락을 누리면서 「하느님을 알고 믿는 이로서의 행복」으로 온누리를 밝히는 따스한 빛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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