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도둑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성역은 없다. 교회도 도둑이 남겨둘 성역은 이미 아니다.
근자에 몇몇 본당에 도둑이 들었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그래도 설마 하던 생각은 빗나가고、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는 이미 전국적인 현상이며、 그것도 80년대에 접어들면서 더욱 빈번해진 사실이라 한다. 이미 도둑일 바에야 무너진 양심이겠지만 그래도 마지막 금기는 있으려니 하던 어리석음이 스스로 서글픔마저 느끼게 한다.
그들의 범행 시간과 수법을 보면、 벌써 교회의 사정을 간파하고 주로 주일이나 축일에 봉헌된 신자들의 헌금을 노리고 있으며、 더욱 사제들의 양심과 종교적 관용을 십분 악용하여 뻔뻔스러운 여유마저 보이는 간교를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은 그 옛날 여름이면 벌어지던 참외서리、 수박서리며、 겨울밤 동리 닭서리로 푸근하고 낭만어린 인심이 통하지도、 통할 수도 없다. 또한 전란의 참화가 삶 속에 생생하던 때、 빨랫줄에서 읽은 옷가지며、 부엌에 남은 보리밥 한 덩이가 없어져 아쉬워하면서도 차라리 배고픈 도둑의 딱한 사정이 선연해 오던 그런 시절도 아니다.
인간성을 잃고 잔인하며 난폭해진 오늘의 도둑의 간교는 언제나 방범구조물 설치의 지혜를 따라잡아 한걸음 앞섰다. 그래도 담벽은 더욱 높아지고 그 높은 담벽 위는 날카로운 유리 조작과 철조망으로 둘러쳐져 삭막한 거리에는 고급 자물쇠가 잘도 팔리었다.
그러는 동안 설상가상으로 우리 앞에는 도둑을 나무라기보다 더 부끄러운 사회적 병폐의 단면이 노출되었다. 소위 권력형 부정과 부패에 따른 부정축재와 과욕이 빚은 비양심적인 거액부도 사건들이다. 그 피해의 규모와 부정의 도가 상식을 넘어서 이제는 이성과 양심마저 마비될 지경이다.
신뢰가 무너지고 가치기준이 전도되어 도둑이 도둑을 손가락질하며『모두가 도둑』이라는 유행어를 낳은 것이 아닌가?
우리가 언제 이렇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모두 도둑이 되었단 말인가!
청렴과 책임을 내세운 사회에서 선량한 시민의 성실과 기대를 이토록 배반한 허탈감을 주었던가! 이러한 비리가 도둑들을 더욱 뻔뻔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목자가 외화를 감추어 나가려 하고、 종단이 나누이어 패싸움질하며、 교회당을 신도 수에 따라 값을 매겨 팔고 사고한다는데 어는 도둑이 그런 곳을 남겨둘 성역으로 생각하겠는가!
지금 신앙인들의 사랑의 헌금이 도둑맞고 있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우리사회 현실의 치부가 놀랍게 반영된 것이 아닐까하여 먼저 모두가 함께 깊은 통회와 비장한 회개가 있어야 하겠다고 생각된다.
다음은 가진 자의 횡포를 반성해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근면하고 성실하게 일하여 얻은 것은 보람되게 쓰는 것이 마땅하다. 분에 넘치는 사치와 향락은 가진 자의 가난한자에 대한 심리적 폭력이다. 그것이 비록 자신의 노고의 댓가라 할지라도 절약과 절제는 여전히 인간의 인간다움의 실현이다. 가진 자의 인색함은 자신을 수전노가 되게 하고 사치와 향락은 욕망의 노예가 되게 한다.
특히 부의 불균형、 성장의 그늘에서 아무리 공업화 과정의 불가피한 현실을 이해하려해도 가진 자의 횡포인 인색과 사치는 소시민의 이해와 인내의 한계를 무너뜨리는 심리적 폭력이 아닐 수 없다.
끝으로 교회자체의 엄숙한 자기반성을 기대한다. 성전에 도둑이 든 회수가 늘어나고 있다니 그래 훔칠것이 없는데도 도둑이 든단 말인가?
모름지기 모든 교회는 열어서 보게하라! 그래서 「가난한 교회」그곳에 훔칠것이 없음을 확인하게 해 주기 바란다. 굳게 자물쇠로 잠긴 곳에는 그만큼 지켜야 할 것이 있다는 뜻이다.
오늘의 교회가 참으로 지킬 것이 무엇인가? 사랑、 진리、 정의평화인가? 이런 것들은 사실은 지킬 것이 아니라 나눌 것이며 전할 것이 아닌가! 교회는 지킬 것이 있지 않고 나눌 것밖에 없는、그래서 「가난한 교회」임을 확인해야 할 것이다.
가난한 교회는 도둑 때문에 잠그지 않고 오히려 열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천상보화는 쌓일 곳이나 도둑들이 탐낼 지상의 보화는 없음을 실증해야 한다.
교회는 영원히 가난한 모습으로 마주 서서 문을 더욱 활짝 열고 오히려 하느님의 사랑을 그들에게 도둑맞듯 내어주기 바란다.
주님! 「우도」가 십자가 위에서 천국을 훔치듯 도둑은 교회에서 당신 사랑을 훔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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