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왕의 사실로써 그리스도교는 가톨릭과 비가톨릭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가톨릭은 약 2천년、비가톨릭은 5백년의 역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한국에서의 가톨릭은 2백년、비가톨릭은 1백년의 역사를 각각 기록하면서 현재 공존ㆍ발전해 가고 있다. 그러나 예수의 법통을 직접적으로 이어 받은 정통으로서의 가톨릭은 제반 측면에서 비가톨릭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위인가 우위인가? 만약 전자 쪽이라면 한국에서의 가톨릭은 어떠한가? 하는 물음에 대한 해답을 풀어보는 것으로 주제에의 접근을 시도해보고자 한다.
사람은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어떠한 형태로든 사회적 지위를 얻게 마련인데 그 사회적 지위를 얻는 형태를 성취지위와 생득지위 두가지라고 주장하는 사회학자들이 있다. 성취지위는 자신의 노력과 능력 여하에 의해 얻어지는 사회적 지위이고、생득지위는 태어나면서부터 거저 공짜로 얻어지는 사회적 지위내지 신분이라는 것이다.
전근대적인 봉건체제하에서의 사람의 지위는 생득지위가 거의 절대적이었고 성취지위는 그 나머지 범위 내에서 치열한 경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고작이었으며 그나마도 생득지위계급의 혈연ㆍ지연 등에 의하여 좌우되는 아주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것이었다. 근대 시민사회의 문이 열림과 함께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의하여 사회적 신분을 얻는 성취지위가 보편화되면서 사회발전도 그만큼 가속화되기에 이르렀으나 여전히 생득지위가 지배하는 체제의 사회는 발전이 그만큼 뒤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오늘의 우리시대에도 이 같은 사실을 볼 수 있다.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성적이 공산주의를 압도하는 점이라든지 가까운 우리 주변에서 국영기업의 성적이 민영기업에 뒤지는 점 등이 그것이다. 즉 국영기업의 불실요인이 개인의 실력을 무시하는 인사난업맥에 있었고 민영기의 경우도 실력자를 중심으로 한 혈연ㆍ지연의 생득지위가 우선하는 기업은 역시 경쟁에서 뒤떨어지고 있음을 익히 보고 있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들로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게 된다.
첫째, 가톨릭은 예수의 법통을 이어받은 정통 그리스도교로서 약 2천년의 역사와 일사불란한 조직망을 구축하고 있다. 따라서 정통후예라는 기독적인 측면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새로운 영역을 넓혀 그 터전을 닦아 나가야 하는 여러 가지 파벌의 비가톨릭에 비해 생득지위가 상대적으로 높다.
둘째、한국의 가톨릭은 이승훈 등 일부 양반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놀랄 만치 철저하게 성취동기로부터 출발하였다. 당시의 생득적 사회 상황으로 볼때 평신도의 힘만으로 1만여명의 순교자들이 피를 뿌리면서 끈질기게 그 맥을 이어온 것은 성취지위의 동기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오늘의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2백년 역사의 영광을 얻게 되었고 세계사에 내놓을 만한 1백3위 성인과 순교선열들을 선배로 모시게 되었다.
세째、2백년의 역사와 훌륭한 선배를 갖고 있는 오늘 이 시점에서의 한국가톨릭은 1백년 늦게 출발한 비가톨릭에 비해 상대적으로 생득적 성격이 강하다.
언제 어디서나 성취지위는 생득지위에 우선하여 앞서 발전해간다. 따라서 한국의 가톨릭이 주제의 의도대로 순교선열들의 정신을 본받아 정말로 이 땅에 빛을 발하는 교회로 발전해가기 위해서는 늘 성취지위에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나」자신의 바람직한 인간상 정립이 요청된다. 이는 크리스찬의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인 예수를 닮으려는 노력이 앞서야 함을 의미한다.
마구간에서 출생하여 십자가에 처형당할 때까지 말과 행동으로 보여 준 그 가르침을 생각한다면 오늘의 내가 반성하고 고쳐야할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세상은 지금 어정쩡한 도움이나 알량한 사랑(?)쯤은 자존심에 대한 침해로 간주하려는 시점에까지 와있다.
둘째、예언직의 충실한 이행이 필요하다. 정치 경제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서 불의가 자행됨을 확인할때 우리는 과감하게 이에 맞서 시정할 의무가 있다.
사람이 사는 곳에 사회가 있고 종교가 있고 정치가 있고 문화가 있고 그리고 역사가 있는 것으로 이들이 각자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서로 밀접한 보완관계를 유지하면서 보다 나은 인류의 행복창조를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부당하게 장사하는 사람들을 회초리로 내쫓으며『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강력하게 응징한 사실(마르꼬11、15~18)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히틀러에게 저항으로 맞섰던 금세기의 위대한 신학자 본 회퍼(D.Bonhoeffer 1906~1945)의 『어떤 미친 운전사가 자동차를 마구 몰아가며 어린아이들을 치어 죽이고 있는데 나는 크리스찬이라는 이유로 차에 치인 아이들을 치료해주는 일만하란 말인가、적어도 그 미친 운전사를 끌어내어 차를 몰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말은 참으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세째、필요악적인 제도나 형식에 지나치게 얽매이는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
가톨릭내의 여러 가지 제도나 성사ㆍ전례 등은 가톨릭이라는 대조직을 이끌어 나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것으로서 가변적성격의 필요악이라 할수 있다.
그러나 크리스찬의 제1의 임무는 어디까지나 성서에 의한 복음전파이며 제도나 규범 등을 지키는 것은 부차적인 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많은 가톨릭신자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미사참례 등만 하면 되는 줄로 착각하고 있는 현상은 바로 이러한 생각에서 연유되는 것으로 하루 빨리 시정해야 할 주객전도식 사고라 아니할 수 없다. 더구나 제도나 형식 등은 성취 쪽보다는 생득쪽 성향이 강한 특성을 지니고 있음에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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