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간의 고된 신병 교육을 마치고 기성부대로 배출될 훈련병들이 여기저기 모여 서서 이야기를 주고 받는게 분명 며칠 후면 배치 받게 될 부대에 관한 것이리라.
『고된 훈련이었지? 훈련 무사히 마친 걸 축하한다』
『기쁘기 보다는 오히려 걱정됩니다』
『뭐가? 』
『신고가 세다는데요』
고된 훈련을 무사히 마친 기쁨보다는 오히려 기성부대에 배치되어 치뤄야 할 신고에 대한 걱정이 더 크다는 이야기이다.
그들의 걱정스런 표정이 십여년 전 그들처럼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치뤘던 신고를 상기시켜 준다.
논산에서 신병교육을 마치고 찾고 또 찾아 들어간 나의 근무지는 최전방 소총중대였다.
연대에서 최종적으로 나의 근무지가 결정되어 중대를 찾아 들어갔을 때는 이미 저녁식사가 훨씬 지난 뒤였다.
비까지 부슬거리는 날씨여서 마음은 어두웠고 더군다나 희미한 호야등불 아래서의 신고는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신고를 받는 중대장과 이를 지켜보는 소대장들이나 선임하사들의 눈길은 무척 밝고 따뜻한 것이었다.
2소대 2분대 2번 소총수로 결정되어 더블 백을 내 관물대에 내려놓자 소대원들은 모두 박수로 환영했고 취사반에서 쌀을 타다가 반합 가득히 쌀밥을 지어 내밀 때 나는 황송하기 그지없으면서도 그걸 마파람에 게눈감추듯 먹어 치웠다.
거의 한달 동안 나는 모든 보초근무에서 제외되었고 사역에서 조차도 열외가 되기 일쑤였다.
처음 치른 신고가 이렇게 우정 가득한 것이어서 그랬던지 그 뒤로 치른 여러 번의 신고가 오히려 즐겁고 기대에 찬 것이었다.
이제 훈련을 마치고 시작될 이 병사들의 천신고가 군에서의 나의 첫 신고처럼 우정 어린 것이기를 빌어 마지않는다. 그리고 부모님께 전역신고를 할 때까지 몸 성히 보람 있게 군 생활을 해 나가기를 기도한다.
신고는 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에도 각종 신고가 있다. 교도소에서 신참의 신고식을 하다가 사람이 죽는 큰 불상사가 있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도 있다.
처음으로 어느 무리와、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인연이 맺어지게 되는 이 신고라는 것이 두렵거나 악의에 찬 것이라면 얼마나 불행한 일이겠는가?
신고는 그래서는 안된다. 오히려 기대에 찬 호의적인 것이어야 한다.
밝고 희망찬 신고는 바로 그 사회의 밝고 희망찬 모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기회에 말하고 싶은 것은 행정적인 각종 신고들 역시 보다 손쉽고 간편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한 신고들이 손쉽고 간편한 것이 되지 못하는 것은 공무원들이나 시민들이 못된 관료주의의 폐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따뜻하고 편한 신고는 민주사회의 얼굴이라고 나는 믿는다.
지금까지 영등포본당 주임 이기정 신부님께서 수고해주셨습니다. 이번호부터는 전주교구 丁勝鉉 신부님께서 집필 해주시겠습니다.
<편집자註>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