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재판」이라는 말만 들어도 치가 떨릴 분들이 계실 것이다.
6ㆍ25전쟁을 어렸을 때 겪은 나이지만 이말을 들을 때면 항상 무서운 광경이 상상된다.
동네 사람들이 학교 마당에 동원된다. 완장을 찬 사람들이 앞에서 설치고 이미 죽은 사람이 되어버린 소위 인민의 적이 포승줄로 묶인채 끌려 나온다.
그는 고개도 가누지 못할 정도로 힘없이 끌려 나오다가 흘끔 모인 사람들을 훔쳐본다. 그러나 거기 구원은 찾아낼 길 없고 그는 타는 듯한 목마름을 느낀다. 몇 사람의『옮소』하는 소리와 박수 소리가 나고 그는 처형된다.
대개 이상과 같은 광경을 상상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소리가 사라져 버린 영상으로 그런 광경을 눈 앞에 그려본다. 마치 볼륨이 완전히 제로인 상태에서 보는 흑백TV 화면처럼.
왜 무음무색(無音無色)으로 그런 광경이 나타나는 것일까? 틀림없이 그것은 인간세상 아닌 지옥의 광경이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모 월간지에 세칭 오원춘사건이 기사화되었다.
나는 그 잡지를 사읽지 않았다. 오원춘사건이란 말만 들어도「인민재판」이란 단어가 떠오르고 이어 저 6ㆍ25때의 비인간적인 비극이 상상되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매스컴은 재판도 열리기 전에 이미 그가 유죄인 것처럼 떠들어 대었던 것이다. 『떠들어 대었다』라고 썼지만 정말 시끄럽기 짝이 없었던 것으로 지금도 기억된다.
만일 인민재판이 오늘날 재현된다면 그게 바로 매스컴재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수백만의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현장감 넘치는 증거를 들이대면서 사람을 두고 떠들어 대는데 거기 내가 심판대 위에 놓여 있다고 상상만해도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되겠다. 그것은 너무나도 비인간적인 일이고 인간문명이 최악의 운명을 미리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절대로 우리가 애써 이룩한 문명을 그렇게도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병형시켜서는 안된다.
그런데 여기 또 하나의 큰 문제가 있다. 그것은 그런 엉터리 없는 문명의 이기가 연출해 낸 흉악한 장면을 보면서도 저게 그 몸서리 쳐지던 인민재판과 조금도 다름이 없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대중의 몰지각이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매스컴의 책임은 정말 막중하다. 매스컴의 윤리성-그것은 이 시대 인류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인류를 보다 나은 인간조건으로 고양시킬지、아니면 금수보다 못한 미증유의 괴물로 만들어 버릴지 모르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너무나 신경과민일까?「일요한담」에 걸맞지 않은 너무 무거운 글을 쓰면서 내가 너무나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반성해본다. 제발 이것이 나 혼자만이 악몽이기를 바란다. 그렇기만하면 나 혼자서 눈만 떠버리면 악몽은 사라질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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