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래간만에 심야의 거리를 걸어 보았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보아온 전주이지만 이 밤의 거리는 마치 이국의 어는 도시처럼 느껴졌다.
많이 변했다. 특히 중심가에는 호화로운 유흥 시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떠들어대며 걸어가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줄은 미처 몰랐다.
청소년 문제라든가 소비문화의 단면을 보여주기 위해 가끔 TV화면을 통해 보았던 광경이 지금 바로 내 눈앞에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저런 사회적 단면이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내 앞에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한참을 심란한 마음으로 걷다가 나는 갑자기 뭔가 큰 사실을 깨달은 느낌이었다.
그것은 이와 같은 거리의 모습은 드러난 것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곳에는 지금 이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많은 사람들에게 요지부동의 도덕적 힘이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흔히 군에서 병력을 집합해 놓고 점호할 때 쓰는 농담이 있다.
『안온 사람 손들어 봐!』라는 말이다. 이 자리에 없는 사람은 손을 들라는 말이니 손을 들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게 뻔하다.
그렇다. 지금 이 자리에 없는 많은 사람들이 이들을 지키고 지탱해 주는 큰 힘을 지니고 있다.
비교도 될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지금 조용히 하루의 고된 일과를 마치고 쉬고 있을 것이다. 많은 학생들이 이 늦은 시간에도 공부에 전념하면서 책상 앞에 앉아 있을 것이다. 많은 근로자들이 잠을 쫓으며 기계를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저력이란 실로 보이지 않는 힘이며 삶을 승리로 이끄는 가장 믿음직한 원동력이다.
비록 눈에 보이는 현실이 우리를 실망시킨다 하더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저 큰 힘이 우리를 희망의 대로에 나서게 하는 것이다.
아직도 이 세계는 저력을 지니고 있다. 아니 앞으로도-세상 끝날때까지 저 힘은 소진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보이는 현실만 보았지 보이지 않는 힘은 보지 못하고 자주 실망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낙관주의자라기 보다는 비관론자인 셈이다.
그런 나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말씀이 있다.
『내가 세상 끝날때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
나에게 있어서 가장 확실한 것은 보이는 현실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힘이요、그것을 확인시켜 주시는 주님의 저 말씀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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