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현 군종신부의 일 가운데 하나는 고된 훈련 중인 병사들을 찾아 위문하는 일이다.
말로만「수고한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자주 먹을 것을 나누어 주기도 한다. 그때마다 나는 병사들에게 이것 역시 서로 나누어 먹는 훈련임을 강조한다.
자주 듣는 일화가 있다.
그것은 전쟁터에서 소대원들이 한병의 수통에서 물을 나누어 먹은 이야기이다.
부상당한 한 병사가 물을 애타게 찾았다. 마침 군종 신부님이 자기 수통의 물을 이 병사에게 내밀었다. 이 병사는 수통을 움켜쥐고 물을 마시려다가 둘러서 있는 전우들이 모두 자기를-수통을- 쳐다보고 있음을 보았다. 그는 우선 소대장에게 수통을 넘겼다. 소대장 역시 소대원들의 눈을 보았다. 그는 소리 내어 물을 마시고 부상병에게 수통을 넘겨주었다.
그런데 수통을 받아든 그는 수통의 물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음을 깨닫고 소대장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도 역시 소대장처럼 행동했고 소대원 전원이 그렇게 하고보니 수통의 물은 소대원이 모두 마시고도 그대로 남는 결과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애타게 찾는 기적이 아닐까?
복음서에는 예수께서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장정만도 5천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을 배불리 나눠 먹이고 또 열두 광주리나 남았다는 기적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오늘날 이 기적이야기를 읽는 우리는 빵과 물고기가 한정 없이 불어나는 식의 기적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오히려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가진 사람이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기 것을 다 내놓고 나눠먹자고 나서는 사랑의 기적을 애타게 바라고 있는 것이다.
「나누어먹기」-이것이 바로 성체성사의 신비가 지닌 중심메시지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교회는 저 기적이야기를 성체성사와 연결시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군대이야기로 돌아가자. 나는 군인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줄 때 대개는 자기들 스스로 나눠먹도록 온통 그들에게 먹을 것을 넘긴다. 언제나 고루 나누어 먹을 수 있도록 충분히 마련하지만 결과는 매번 실망스럽다. 받아먹지 못한 병사들이 있기 마련인 것이다. 그럴 때 마다 허전하고 씁스레한 기분을 금할 수 없다. 나눠먹는 것 역시 중요한 훈련이라고 강조했는데 나는 이 병사들의 나눠먹기 훈련을 성공적으로 시키지 못하고만 격이 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아름다운 광경이 있다.
전방의 어느 야전병원에서의 일이다. 그날 나는 성모회원들과 함께 정성스럽게 토마토를 씻고 썰어서 설탕을 쳐서 간이접시에 담아 병사들에게 돌렸다.
세사람 또는 네사람 앞에 한 접시씩 나누었는데 뒤에 목발에 의지하고 서있던 병사들에게는 몫이 돌아가지 않고 말았다. 앞에 앉은 병사들이 너무 욕심을 부려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속이 상했다. 함께 나눠먹자고 음식을 마련해왔지 어느 한 부류의 이기심내지는 욕심을 충족시켜 주려고한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앞에 앉은 병사들을 달래어 뒷사람들과도 나눠먹도록 애를 써봤으나 허사였다. 그때 뒤에서 불편하게 서있던 외과환자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신부님 우리는 괜찮습니다. 먹는 사람이라도 충분하게 먹을 수 있게 해 주시지요』
그 말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들의 이해심 많은 마음이 곧 내가 바라는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나누어먹기」 이 말처럼 인간적인 말은 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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