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초 중부지역을 강타한 집중폭우로 수많은 피해를 당한 남한의 동포들을 위해 북한이 적십자사를 통해 지난 9월 29일ㆍ30일 육로와 해로로 쌀과 천 의약품 시멘트를 보내왔다.
우리는 이북에는 쌀이 모자란다、생활이 말이 아니다、고생만 한다、생지옥이다 도대체 사람 살곳이 못된다라고 알고있다.
그런데 제 먹을 것도 없으면서 자기 집보다 훨씬 잘 사는、그것도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의 부자를 도우다니 무언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니 자연히 별의별 억측까지 나온다. 트로이의 목마(木馬) 처럼、우리를 속여 가마니 속에 군인을 넣어서 기습공격하지 않을까 또 쌀속에 독약이나 섞지 않을까. 어디에 땅굴을 파면서 시선을 딴데로 돌리려는 간계가 아닐까 등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구심、상상에 상상을 거듭하면서 왜? 하고 머리를 갸우뚱하는 것은 우리로서는 공연한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그들의 행위가 그랬고 또 앞으로도 능히 그럴 수 있는 공산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의 선의를 단 한번도 선의로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갑자기 베푸는 이면에는 무슨 도깨비 둔갑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용히 생각해 보자.
우리의 마음자세가 이래도 되는 것인지.
이런 얘기가 있다. 옛날 어떤 고을에 효자인 원님이 그 고을안의 아주 효자인 가난한 농부에게 후한 상을 내렸다. 그것을 본 불효친구가 저도 상을 탈 양으로 하루는 장에서 고깃근을 사서 늙은 어머니에게『엣다、먹어라』하며 던져 주고는 동네방네 자기가 효자인 양 떠들어 댔다. 원님 귀에 들어 가라고.
그러던 어느날 고을 원님이 그 동리를 지난다는 소문이 났다. 이 불효자식은 싫다는 어머니를 끌다시피 길거리에 데리고 나와서 원님행차만 기다렸다. 드디어 원님이 지나간다는『쉿』소리와 함께 가마가 자기앞에 올때를 기다려 노모를 둘러업고 가마앞을 도도히 지나갔다. 그랬더니 원님을 호위하던 군졸들이『이놈 비켜라』하고 소리를 지르니 갑자기 주위가 소란해졌다.
원님이 영문을 물었다. 군졸이 이러저러한 불효자가 상을 탈양으로 노모를 업고 행차를 방해했다고 아뢰었다. 그러면서 마음에도 없는 효도를 하는척 하고 노모와 원님을 기만한 저 불효자에게 중벌을 내리도록 간하면서 효자와는 전혀 다른 간계한 놈이라고 야단들이다.
그때 원님은 잠깐 생각하더니 조용하고 온화하게『그냥 두어라. 거짓으로라도 효를 하려고 했지 않으냐 흉내를 내어도 늙은 모친을 업고 다니는 것은 효자의 흉내가 아니냐』하면서 그를 불러다가『이제부터는 흉내만이 아니고 마음까지도 효성스러워 지도록 해라』고 당부하고 행차를 계속했다 한다.
얼마나 도량이 넓은 원님인가. 지금까지 했던 짓도 미운데 더더욱 원님인 자기 앞에서 거짓효도를 꾸미면서 상을 타려하다니『천하의 몹쓸놈』하면서 벌을 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원님의 생각은 달랐다. 그렇게라도 해서 거짓된 마음에 진실을 일깨울수 있다면 하는 아쉬움에서 너그럽게 대해 주었던 것이다.
약자는 약자이기 때문에 간계를 꾸민다. 간계를 몰라서도 아니고 또 그 간계가 나한테 도움이 되기 때문도 아니다.
다만 강자의 입장에서 같은 사람의 탈을 썼기 때문에 같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조용히 이번만은 간계가 아닐 것을 바라면서 기다릴수 있는 마음이 강자의 마음이다.
쌀은 와도 안와도 되는、우리의 입장은 강자의 입장이 아닌가. 그 수많은 억측과 말들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국민 누구를 막론하고 북한이 우리보다 잘 살아서 도우려는 것이 아닌 줄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민족적 양심에서 또 동포애로 도우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더 더욱 잘 알고 있다. 우리가 받겠다고 한 이유는 그 쌀이 필요해서가 아니다. 다만 민족화합의 큰 뜻을 한가닥 희망을 갖고 보여 주자는데 있다. 그렇다면 끝까지 바다와 같은 넓은 마음으로 기다릴 수는 없었을까. 갑자기 말이 많으면 진짜 강자가 아니다.
비바람 폭풍우가 몰아쳐도 산은 묵묵히 거기 서 있다.
알고 속은 것은 속는 것이 아니다.
속였다고 손뼉치는 사람을 묵묵히 지켜보는 대인의 태도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본사는 다변화하는 현대사회 안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고 느끼는 일들을 가톨릭 신앙인의 눈을 통해 조명해보는「方舟의 窓」란을 마련했습니다.
3개월 단위로 4명의 필자가 차례로 엮어나가는 이 란은 먼저 김영환 신부(대건신대학장) 김수업 교수(진주경상대) 최용록 신부(서울월곡동본당주임) 맹광호 교수(가톨릭의대) 순으로 매주 게재됩니다.
김영환
▲로마울바노대학서 司祭敍品
▲라떼란대학 교회법 및 比較民法 박사
▲대구액션지도
▲로마교황청대사관 근무
▲대구계산동주임
▲現대건신대학장겸 대구관구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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