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의 가장 큰 명예는 아마도 나라와 겨레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겠다.
군종신부 역시 군인인 이상 그와 같은 명예심을 지니고 있다 해서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한국 가톨릭 군종사에 전사한 군종신부는 없다.
그러나 군종신부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다 순직한 분은 여럿 계시다.
처음으로는 김후성 신부님의 경우인데 이분은 군종신부로서 임무를 수행하다 얻은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다음으로는 김재용 신부님과 이태규 신부님의 경우인데 두 분 다 교통 사고로 순직하셨다.
작년에 우리는 또 다시 두 분의 젊은 군종신부님들을 잃었다. 이치열 신부님과 김성진 신부님의 경우인데 두 분 역시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이제 전역을 하고 무사히 군생활을 마쳤다는 생각에 앞서 두 분 신부님이 나에게 준 충격을 되새겨 본다.
두 분 다 20대의 젊은 나이였다. 두 분의 주검 앞에서 나는 내 죄의 무게를 견디기 어려웠었다.
물론 그 깨끗한 영혼 앞에서 죄많은 선배 군종신부로서 느끼는 어쩔 수 없는 죄의식이었지만 그보다 먼저、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해왔는가 하는 깊은 반성에서 우러난 자각이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풀어 주시는 나날들은 얼마나 큰 선물인가? 매일 살아있다는 것을 은총으로 깨닫지 못하고 살아왔으니 문자 그대로 허송세월만 해온 셈이다.
두 분 신부님의 주검 앞에 설 때마다 나는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었다. 그러나 나날의 삶을 사랑해야겠다는 그 강력한 결심은 현실 앞에서 번번히 무산되어버린 것이다.
이 가을의 문턱에서 나는 죽음을 생각하고 다시 한번 경건히 충만한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해본다.
충만한 삶을 산다는 것은 매일 매순간 삶을 사랑하고 있음을 깊이 느끼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무심히 서서 익어가는 가을들판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삶의 고마움을 느껴본 경험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주어진 시간에 주어진 여건속에서 주어진 임무를 알뜰히 수행하고 나서 삶을 만족스럽게 느껴본 경험 역시 누구에게나 공통된 것이리라.
얼마전에 주말 TV명화「아까운 열여덟 나이에」(Death Be Not Proud)라는 영화앞에서 우리는 다시한번 삶의 엄숙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죽음과 싸우면서도 주인공은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한다.
아무리 죽음을 목전에 두었어도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인간이 무엇이고 인간적인 삶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게 한다. 주님、주님이 주신 제 생명을 사랑합니다. 그 사랑의 표로 매 순간을 주님 눈에 아름답게 살아가겠습니다.
모든 삶을 축복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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