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주름지고 검게 그을린 얼굴, 그러나 건강하신 모습을 뵈올때면 먼저 천주님께 감사드린다. 이제는 편히 쉬셔야 할 연로하신 분이시지만 아직도 병자방문, 상가방문을 분주히 다니시는 어머니. 생활이 어렵거나 몸이 아픈 교우의 집을 찾아 오늘도 검은 가죽가방을 들고 나서시는 어머니.
24년전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통곡을 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당시 우리 나이는 동생이 두살, 누님이 여덟살, 나는 다섯살이었다. 아버지께서 남겨주신 것이라고는 강변에 개간한 밭 한뙤기, 자그마한 집 한칸 뿐이었다. 어머니가 천주님을 알게된 것은 성당에서 배급주는 밀가루와 우유덕분이었다고 한다
천주님을 비로소 영접하게된 것은 어느 여름날의 거센 강물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참외행상을 나가셨는데 갑작스런 폭우로 강물이 불어나자 우리 자식들이 걱정이 되어서 거센 물결임에도 불구하고 강을 건너오시게 되었다. 의외로 물살은 거칠었고 어머니는 그 물살에 휩쓸려갔다. 그때 어머니는 붉은 강물속에서 곤두박질을 치면서 천주께 기도를 올렸다고 했다. 어린 자식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천주의 섭리가 있어서인지 어머니는 간신히 강기슭으로 떠밀려 나오셨고 그날 이후 우리식구는 모든 일을 천주께 맡겼다.
어릴적 외숙부께서 글을 배우실때 어깨너머로 익혀두었던 한글로 매일 한페이지씩의 성서를 봉독, 어머니는 피로한 하루 일과의 끝 마무리를 하셨다. 그리고 우리들 자녀교육도 교리를 중심으로 펼치셨다.
어머니는 지금도 늘 손에 묵주를 지니고 계신다. 언제나 천주님의 부름에 열심히 대답하신 어머니가 계셨기에 당신의 막내아들은 성소생활을 위해 수도원으로 갔다. 아우가 당신 슬하를 떠나던 날 어머니는 모성(母性)의 나약함을 보이지 않으려고 얼굴을 돌리시어 눈물을 훔치시고 힘차게 손을 흔드셨다. 그리고 오늘도 어머니는 막내아들의 수행(修行)을 생각하며 분주히 병자방문 상가방문을 나서고 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