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페르샤만 북쪽에 있는「하르그」섬 근해에서 이란으로 원유를 실으러가던 리비아국적 초대형 유조선 한척이 이라크공군기의 습격을 받은 참사가 일어났었다. 그 배는 우리나라 모회사에서 빌려 쓰던 것이었기에 피격사건이 크게 보도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엄청난 참사에서 불쌍하고 애꿎은 선원 여섯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이 크게 다쳤다. 보도에 따르면 유조선 피격은 결코 처음 일이 아니며 드물지 않은 일이라 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각 뉴스 미디어가 그 참사를 보도하는 자세였다. 신문이나 텔레비전들은 그야말로 무표정하다할까、담담하다할까、마치 아무 느낌도 의지도 없는 가면을 쓴 사람이 독백을 뇌이듯 그 사건을 보도하였다. (물론 보도를 하는 사람이 흥분을 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어느 텔레비전에서『사람이 많이 죽고 다치고 하였으나 알아보았더니 한국 측에는 피해가 없다』라는 남의 집 불구경하는 식의 해설을 달고 있었던 점이다.
이번에 있었던 유조선 피격이 금년 들어서만도 자그만치 마흔하고도 두 번째의 일이었다고 보니 불감증에 걸리는 것도 나무랄 수만은 없을 것이다. 아니 그보다도 더 참혹하고 기억하기도 싫은 천인공노할 사건을 너무 많이 겪은 우리들이기에 이제는 지쳐버렸을지도 모른다. 허나 생각해 보면 그런 참사의 연발이나 소위 地球村의 어수선한 분위기보다도 양식 있는 사람들의 무감각、무관심 또는 자포자기가 진정 문제인 것이다.
그 텔레비전의 해설자가 무의식중에 드러냈듯이 나와 관계가 없는 사람이 죽고 살고 하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사고방식이 만연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운 것이다.
한강물에 빠진 사람을 보고 있던 군중가운데 黑人병사 한사람이 물속에 뛰어들어 구출했다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공교롭게도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한국 사람들은 물에 뜨는 재주가 없었기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그러하지만 한밤중에 이웃집에서『도둑이야』하고 소리를 지르는데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것은 반드시 잠이 깊게 들어서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쓰러져있는 사람을 보고 지나쳐버리는 것은 반드시 더 급한 일이 있어서만도 아닐지도 모른다. 이름 있고 돈 있는 사람은 떠받들고 모시고하면서 정작 어려운 사람은 못 본체하는 야속함이 우리마음 한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멀리 페르샤만에서 얼굴 모르는 사람들이 당한 참변은 언제 나에게도 닥쳐올지 모를 일이며 이웃집을 턴 그 도둑이 어느 날 밤에 내 집 담을 넘을지 모를 일이고、내 스스로가 언제 어디서 넘어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옛부터 착하고 베풀 줄 알고 눈물이 있는 사람은 참 기쁨을 누리리라하였다. 사람의 마음은 어느 한순간에 착하게 돌아선다고 한다. 달을 두고 해를 두고 뜸을 들여가면서 돌아서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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