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은 말을 잘 못한다. 한다 하더라도 어른들처럼 조리있게 자기의 뜻을 펴내지 못해 답답한 나머지 울거나 발버둥을 치면서 자기의 뜻을 전하고자 한다. 그러다가 좀 크면 온갖 이유와 변명으로 또 자기의 뜻을 전하려든다. 어릴때는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두발을 버둥거리는 것 이상 더 할수없다. 그러나 나이가 좀 들면 밥을 안 먹든가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엄마의 속을 썩인다.
그러다 그도 안되면 집을 나간다든가 공연히 동생을 때리거나 부모의 말씀을 거역한다. 일종의 데모다.
그러다 철이 들고 성년이 되면 항거의 방법은 다양해진다. 이치로써 부모에게 제 뜻을 설득하려 든다. 노력하다가 그도 잘 되지 않으면 제 뜻은 굽히지 않고서도 순종하든가、아니면 언제까지나 인내롭게 기다리다 뜻을 또 설명하거나 포기도 할줄안다. 도저히 안되는 일이라고 단념을 하고 보면 때로는 제 뜻을 펴려고 애쓸 때 보다 오히려 편해질때도 있다.
차라리 내가 커서 부모가 되면 내 자식에게는 그러지 않아야지 하고 다짐도 해본다.
그러다간 부모의 처지도 생각해 보고 내가 어머니가 되었을 때도 역시 이런것을 고집할까 하고 때로는 깊이 뉘우치기도 한다. 그러나 어른의 입장에서는 아이들이 왜 이런 행동을 취하는가를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갓난 애기들이 울며 보채는 이유를 알지 못하면 큰 병을 얻어 아이가 죽게 될지도 모른다. 한창 사춘기의 자녀들이 반항하는 그 이유를 바로 알아듣지 못하고 억누르기만 한다면 자식의 장래를 영원히 망칠수도 있다.
학생들이 데모를 한다. 이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것도 요즈음에 와서는 돌을 던지고 기물을 파괴하고 심지어는 천륜을 어기는 일까지 서슴치 않고 자행한다. 스승을 때리고 사람을 가두고 린치까지 가해 가면서 내뜻을 펴려한다. 한두번、하루 이틀이 아니고 한두곳에서 일어나는 데모도 아니다. 이런 현상을 앞에두고 우리는 무엇이라 하겠는가. 어렸을때와 같이 발버둥을 칠 나이도 지나고 가출을 해서 애를 먹일 나이와 처지도 아니고 설득을 하려고 애도 쓰는 것 같지도 않고 그저 닥치는대로 때리고 부수고 하는 양이 마치 이성을 잃은 사람같다. 또 학생들이 내거는 슬로건 역시 다양하다. 어떤 철거민의 생활 대책을 세워라 공장직원들의 임금을 올려라 무능한 총장은 물러가라 학교이전을 반대한다 일본과 외교를 하지마라 누구 물러가라 누구 죽여라 등 가지수도 많다.
내거는 이유는 학교마다 다르고 지방마다 다르다. 그럼 무엇을 어쩌라는 것인가. 여기서 한번 생각해 보자. 학생들이 한번도 살인강도 좀도둑 날치기 들치기 차치기들은 물러가라하고 데모한적은 없다. 우리사회에서 있어서는 안될 그 많은 악은 그대로 두어야 하는가. 가장 악랄하다는 가정파괴범은 그냥 두어도 되는가. 쓰리꾼은 그대로 두어도 되고 사기꾼은 그대로 두어도 되는가. 아닐것이다.
그럼 왜 학생들은 지성을 외치면서 반(反)지성적인 폭력과 무질서를 일삼는가 말이다. 이제 우리는 여기서 서로를 한번 반성해 보자.
아이들은 어른을 본따 성장한다. 대개의 경우 밥상에서 말씀하시는 부모한테서 많이 배운다. 그러자면 같이 식사를 해야하는데 지금은 같이 한 상에서『오늘 학교에서 무얼 했느냐』하고 다정히 묻는 부(父)도 모(母)도 없다. 배울 상대도 없다.
또 어쩌다가 같이 앉을 양이면 어느놈 등쳐서라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신종진리(?)만을 얘기하고 계가 깨지고 손해를 봤다느니 부도가 나서 나는 망했다느니 하는 말외에 또 무엇을 하는가. 신문 잡지 텔레비젼같은 매스컴에서는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악랄한 수법으로 등치고 간내먹는 얘기들、눈알 빼놓고 도둑질하는일을 보도하고 그도 모자라서 외국의 강도사건까지 보도하고들 있지 않은가.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업자와 짜고 참고서를 혹은 그림물감을 어디서 사라고 한다든지 봉투 건네준 가정의 아이들은 앞자리에 앉히고 십년전 낡은 노트로 오늘도 강의를 하는것등을 학생들은 모를줄 아는가 듣는것 보는것이 이런것뿐인 가정이나 사회에서 우리의 보배인 아이들은 도대체 무엇을 배우고 성장하는가. 정의사회 구현의 슬로건이 무색하게 고위 공직자들의 재산이 2백억이니 2천억이니 하는 소문이 있다면 도대체 아이들은 어디에 초점을 맞춰 살아야 하는가.
또 우리나라의 장래는 어떻게 될것인가. 그리고 진짜 피해자는 누구인가? 학생인가、사회인가、국가인가、깊이 깊이 반성해보자.
너도、나도、학생들도、기성인들도 이젠 그만 하자. 데모도 폭력도 비방으로 불신도 하지말자 또 이런일이 일어날 소지를 없애도록 다같이 노력하자.
이것이 다 우리의 것인데 우리는 모두가 한 핏줄 한 형제인데、누가 누구를 억압하고 누구를 탄압한단 말인가? 또 누구를 위해 부수고 돌을 던지고 소리를 지른단 말인가?
거짓없는 세상、정의롭고 따뜻한 세상、참말 착한 사람이 잘사는 세상이 되도록 다같이 노력해야겠다. 누구든지 가슴에 손을 얹고 조용히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눈을 감고 양심의 소리를 듣고 지금 나한테 주어진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열심히 노력하자 역사의 비판은 준엄하다. 그 역사가 오늘에 사는 우리를 잘했다고 칭찬하도록.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