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높은 하늘에 커다란 십자가가 나타났어요. 그리고 아름다운 음악이 들려오고 세상은 온통 아름다움으로 가득차 있었어요』어둠과 함께 밤이 깊어 갈수록 죽음의 소용돌이 속으로 더욱 깊숙이 빨려 들어가던 아내는 새벽이 되자 밤새워 지켜보고 있던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담당의사로부터 절망선언을 받았던 그날 밤 꺼져가는 한 생명을 지켜보던 내눈에는 결혼 일년동안에 걸어온 아내의 발자취가 뚜렷이 떠올랐다.
결혼하기 일년 전 철저하게 미신을 지키는 가정에서 홀로 영세를 한 아내. 오직 하나 소중한 믿음을 지키고 가꾸어 나가고자 비신자들의 부귀와 관록을 앞세운 청혼을 모두 거절하고 가난속에 묻혀사는 나와 결혼을한 아내였다.
어려운 생활때문에 전주 양계장에서 늦은밤까지 함께 고달픈 일을 해야만 했다.
불행히도 내가 다리를 다치자 임신한 무거운 몸으로 남편의 몫까지 해내야만 했던 아내, 또 다시 역경이 겹쳐 임실산골의 가파른 산비탈을 오르내리며 밤줍는 일을 하기도 해 무척 약해졌던 아내였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역경과 고난을 비탄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오직 굳센 믿음의 생활을 갈망했던 아내. 산전에 얻은 감기가 산후에 갑자기 폐렴으로 악화돼 병원에까지 갔었다.
중환자실의 독실이 모자라 응급실에서 나흘동안이나 머무르다가 죽음에서 벗어난 아내는 순교성조 손선지의 전구와 의료진의 수고와 이웃들의 도움에 감사하면서 함께 성가를 부르며 성서를 봉독하였다.
아내를 위한 생미사가 전동성당에서 봉헌되는 시간에 기도를 하던 아내는 갑자기 소리치듯 말했다.
『저기를 보아요. 저하늘의 십자가를… 예수님과 성모님이 내려다 보시네요. 아…층층대가 하늘에서 땅에까지 내려왔어요!』이어서 아내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나직하게 노래를 불렀다. 『라라라… 르르르』무슨 뜻인지는 알수 없었지만 한참동안 계속되는 그 노래는 무척이나 신비로왔고 아내의 얼굴에는 평온의 빛이 넘치고 있었다.
아내의 건강은 날이 갈수록 서서히 나아져갔다. 그러나 하느님의 깊은뜻을 뉘라서 알수 있으리오?
입원하지 두 주일만에 아내는 아무런말도 남기지 않은채 스물입곱의 젊은나이로 하느님 품안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시신을 입관하려 할때 아내의 얼굴은 무척이나 곱고 아름다왔으며 입가에는 밝은 미소를 띠우고 은은히 빛나고 있었다. 묵주를 손에 쥔 그 모습은 마치 성모님의 자태와도 같아 보였고 지켜보던 사람들은 모두가 감탄하며『죽은 얼굴이 저토록 아름다울 수가…ㆍ!』하고 말끝을 잇지 못했다.
역경과 고난의 가시발길을 걸으면서도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했던 아내의 무덤앞에 십자가를 세우면서 나는 아내의 영원한 안식을 빌고 또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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