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본성에는 양면이 있다. 근원적으로는 陰과 陽、선과 악에서 시작하여 바른것과 그른것 기쁨과 노여움、슬픔과 즐거움、용맹스러움과 비겁함등. 그렇고보면 치기(稚氣)나 장나기는 어른스러운 것이나 근엄한것과 짝이되는 심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근엄하고 점잖은 성품은 곧잘 상대방의 접근을 주춤하게 하는 가하면 치기도 안스럽게 보이면서 마음을 놓이게한다. 근엄한 사람은 내심이야 어떻든 간에 적어도 외양으로는 치기어린 말이나 무잡스러운 행동거지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또 나무라기도한다.
하지만 가식에 숨이 막히고 허영에 싫증이나 사회를 살아나가는 淸風이 아닐수 없다. 치기는 순수함과 때묻지 않음과도 일맥상통하며 치기만이 보는 천지가 분명 따로 있을것이다.
인류의 문화발전에 이바지한 위인들중에는 치기어린 사람들이 적지않았던것 같다. 베토벤이 그의 성(姓)앞에 달린 반(van)을 귀족가문에서 사용하는 본(von)처럼 생각하고 지냈다는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처칠경은 남이 보는데서만 그 독한 여송연을 입에 물고있다가 사람이 없는방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재떨이 속에 던져버렸다한다. 이런일들은 가식이나 속임수라기 보다는 어린애같은 치기의 소치이었을 것이다. 현대X선진단의 정수라고도 할수 있는 심장 조영술(造影術)은 한 젊은 의사의 장난같은 자기실험에서 비롯하였다.
그러니까 1929년 베를린의 어느 대학병원에서 조수노릇을 하고있던 베르네르 포르스만(Wener Forssmann)은 스스로의 왼팔을 걷어올리고 요도(尿道)에만 꽂게 되어있는 카테xj를 정맥을 통해 심장쪽으로 끼어넣었다. 그런다음 가슴의 X선사진을 찍어 그 카테터의 끝이 심장에 도달한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는 카테터를 무려 아홉번이나 꽂아대는 바람에 나중에는 더 꽂을 혈관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당시 이 실험결과는 단 한페이지의 간결한 논문으로 정리되어 학술잡지에 발표되었다.
근엄한 사람들의 눈에는 이 일이 치기어린 바보같은 짓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그의 교수는『병원이란 환자를 돌보아주기 위해서 있는것이지 서어커스를 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모욕적인 꾸지람과 함께 그 젊은 의사를 내쫓고 말았다.
그러나 세상에는 이 위험스럽게까지 보였던 젊은 의학도의 맑고 티없는 치기어린 뜻을 기리줄 아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라인江변 어느 한적한 마을에서 개업을 하면서 근근히 지내던 그에게 하루는 「스톡홀름」에서 전보가 한장 날아들었다. 1956년도 노벨의학상을 받게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심장에 카테터를 꽂은 사실이 상을 주게된 이유이었다.
그는 흐뭇했고 자랑스러웠을것이다. 그러면서 장난같이 보였던 치기어린 실험의 참 동기가 순수하게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27년전 베를린 병원에서의 조수시절을 야릇한 심정으로 회상하였을 것이다. 진정 꾸며진 일은 재미가 없다. 먼저 남들이 흥미를 잃게되지만 마침내는 스스로도 역겨워지는 법이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가식을 버리고 오히려 稚氣를 사랑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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