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초「방콕」회의에서 돌아왔다. 아시아주교회의 산하에 있는 타종교관계 위원회의 소집이었다. 십여개국 주교님들과 몇분의 신부ㆍ수녀ㆍ평신도 전문위원들 모두 합해서 40여명이었다. 내용은 동남아시아지방에 있어서의 가톨릭의 현주소를 찾고 타종교와의 대화가 어느정도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보고 분석、토론하는 것이었다. 각나라대표들의 보고에 의하면 한국을 제외한 전부의 나라에서는 불교ㆍ이슬람교ㆍ유교ㆍ힌두교ㆍ신또이즘등 그 나라의 대다수 국민이 신봉하고 있는 종교때문에 가톨릭이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종교문제만이 아니다. 일본과 싱가포르를 제외한 거의 전부의 나라에는 기아와 질병 또는 경제상태가 나빠서 굶어 죽고 병들어 죽는수가 하루에도 수백명에 이르고 있다한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태리인신부는 거기서 20년을 사목하면서 단 한 순간도 눈에서 뗄수없는 배고픈 사람들의 영상 때문에 마음편할 날이 없다고 했다. 나보고하는 말이『만일 당신이 방글라데시에가서 불쌍하다고 지나가면서 돈 한닢을 주면 백미터도 못가서 밟혀죽을 것이다』라했다. 그만큼 사람들이 몰려와서『나도 나도』하는것이기 때문이란다. 인도에는 성우(聖牛)때문에 『牛천국 人지옥』이란 말까지 외교관들이 한다고 한다.
대도시 번화거리에 소떼들이 몰려다니면 속수무책. 소 등뒤에서 합장을하고『소님 빨리 지나가 주소서』하고절만 할따름이란다. 그것뿐이랴. 90%이상이 문맹이어서 정부에서 어떤 시책을 발표해도、안해도 아무 상관없다한다. 다만 지금 이 자리에 쌀밥 한사발만 주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다음순간은또 배가 고플때 보잔다. 「캘커타」거리에는 기아에 쓰러진 사람이 낙엽처럼뒹굴고 그 옆으로 채소상점에서 물고나온 배추포기를 씹으면서 소가 지나가도 하나도 이상할것이 없단다. 이런판국에 가톨릭이란 교회는 무엇을 할수 있을까. 인류구원의 대명제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박애정신으로 이웃을 도우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들에게는어떻게 들릴까. 그들은 자기가 신봉하는 문제에 관한한 생명을걸고 나선단다. 이슬람이 그렇고 힌두가 그렇고 불교 신또 다 자기가 신봉하는 종교에 충실하다. 그들 중 하나가 가톨릭으로개종하면 살아남지 못한단다. 멀리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이사를하든가 죽든가 아니면 적어도 사회적으로 매장되어야하는 슬픈 현실이다. 그런가 하면 대다수의 나라에서는 정부와의 사이가 좋지 못하다. 때로는 국교가 불교나이슬람이기 때문에 가톨릭을 적대시하고 때로는 많은 수의 국민이 가톨릭이아닌 타종교이기 때문에 정부로서도 어쩔수없단다.
이런 보고를 들으며 연사 주교님들의 표정을 살피니 구석진데없이 의지로 가득차 있고『해야한다. 무엇인가 복음전파를 위해 해야한다』라는 굳은 결심이 넘쳐흐르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우리 한국을 생각해보고 우리 교회를 생각해보았다. 경제는 고도성장을 향해 치닫고 옛날과 같이 배고파 죽는 사람도、보리고개 감자고개란 말은 아주 옛이야기다.
의료혜택도 옛날 같지 않고 먹는것 입는것 사는것 다 선진국에 못지않다 거기다 어떤 종교를 신봉하는 절대자유의 나라、개종하는 배교를하는 그것은 그 사람의사정이요 정부와는 상관없다
거기에 비해 가톨릭은 어떤가? 날이 갈수록 즐거운 비명、예비자가 너무 많아、성소가 너무 많아 성당도 신학교도 배로 느는 현상이다. 오히려『믿을 양이면 가톨릭을 믿겠다』는 그많은 사람들、주일이면 파김치가 되는 본당신부들、어느 한쪽을 바라보아도 한국 가톨릭은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고 황금시기를 맞이했다. 어디를가나『신부님 수녀님』하며 성좌에 모시고『주교님』이면 하느님 같이 모시는 한국은 확실히 은총을 듬뿍받은 나라다.
그러다보니 성직자들의 목이 뻣뻣해지고 반말짓거리로、턱으로 지시한다. 그래도 신자들은『우리들의 신부님』『우리들의 수녀님』하고 어떻게 해야만 좀 더 편안하게 모실수 있을까 하는 궁리뿐이다. 두세시간 걸리는 긴 예절동안 청빈ㆍ정결ㆍ순명의 허원을 한 수도자들의 생활은 고사하고라도 10년을 갈고 닦고 오로지 그리스도의 복음전파에만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살겠다는 성직자들의 생활은 또 어떤가. 나도 그 안에 한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반성해 본다.
전세계 교회가 하나고 우리는 모두 한 신비체의 세포 하나하나가 아닌가 어떻게 우리는 무사안일에 흡족해서 마치 내가 그리스도답게 살기때문에 가톨릭이 잘 되는양 목에 힘을 주고있는가. 어떤 역사를 보더라도 태평성대는 오래가지 않는다. 황금시기 또한 오래가는 법이 없다. 그것은 그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안일무사주의로 잘 돼가는 것을 기화로 뚱땅거리며 허송세월했기 때문이다. 황금 시기일수록 정신을 차려야 한다. 한 때 잘하던 나라들이 말하는 교훈을 우리는 수 없이 보아왔다. 지금 한국교회가 해야 할 일은 우선 다시 그리스도의 수난시기를 묵상하고 자중해야 할 때라고 본다. 어느날 갑자기 삿대질의 손가락이 우리 성직자 코앞에 내밀어질 땐 이미 늦었다. 그때 만시지탄의 한숨이 아무리 길어도、땅이꺼져도이미 때는 늦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황금시기를 맞지 못하리라. 건강은 건강할때 조심해야한다. 한번병들면 회복하기 어렵다. 지금 우리교회의 상태는 최고의건강시기다.
바로 이때 우리는 정신을차려야 한다. 친절하고 겸손하며 낭비하지 말고 주어진환경에서 최선을다하는 생활태도가 필요하다. 강론대에서의 사랑은필요 없다. 종이 쪽지에다 교서나 지침서를 발표만하면 모든것이 원만하게 이루어질것인가. 오늘날 한국교회가 걷고있는 길은 과연바람직한 방향인가. 아니면궤도수정을 해야할것인가를 연구검토하고 옳은길을 찾아가야한다. 행동해야 하고 실천해야한다. 말이앞서는 사랑、명절때 떡이나 갖다주는 사랑도필요없고 겸손해야한다는말도 열심해야한다는 말도필요없다. 지금은 행동의시기、실천의 시기、무엇인가 구체적으로 결과가보이도록 해야하는 시기이다. 이것은 현금주의적인 뜻에서하는 말이아니다.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말을 했기때문이다.
말과 행동이 차이가 났기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보여달라는 사람에게 유다를 보여줄수야 없지않은가. 내가갖지 않은 것을 어떻게 무슨재주로 보여줄 수가 있단말인가. 지금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없는 교회가 이미됐지않았나 걱정스럽다. 그럼 지금부터라도 위 아래 할것없이 신비체의 구성원이라면 그리스도답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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