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 뒤돌아보면 그 자리에서 꿈쩍도 안하시는데
저는 끼웃끼웃거리며 시간을 다 허비합니다
님은 하늘가로 조용히 죽어가시고
저는 가만히 방구석에 쳐박혀 있읍니다
님은 물처럼 바윗가를 휘이 돌아 가시는데
저는 힘으로 야단스럽게 깨뜨릴려고 합니다
님은 풀섶을 헤치시며 길을 놓고 핑 가시는데
저는 남의 편한 길만을 염치없이 밟고 갑니다
님은 꽃바구니를 집집마다 문간에두고 떠나시는데
저는 변변찮게 꽃 한송이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님은 먹고 마실 것을 늘 후하게 주시는데
저는 이웃집 아이한테마저 뭘 주게되질 않습니다.
님은 산너머 산너머 마을까지 소식을 전하느라 바쁘신데
저는 수숫대마냥 멍청히 서있기만합니다
님은 폭포로 달리며 무지개빛을 만드시는데
저는 시냇물만큼도 어여쁘게 흐르지 못합니다
님은 따스운 봄날 만송이 들꽃으로 살아오시는데
저는 애처롭게 그림자마냥 죽어있읍니다
님의 집에는 오만 새들이 울며 평화를 나르는데
제 집은 풀한포기도 나질 않아 흉가 같습니다
님은 별님 데리고 밤새 불꽃을 피우시는데
저는 성냥불만한 빛도 일구질 못합니다
님은 이른 새벽 논배미에서 쟁기질을 하고 계시는데
저는 늦도록 돼지마냥 미련하게 잠들어 있습니다
님은 혼자여도 외롭지 않으신데
저는 늘 고슴도치마냥 웅크리고 치를 떱니다
님의 얼굴 언제 거울을 들여다 보듯이 보리까
저는 바보같이 통곡속에 세월을 다 보내는데
님은 언제나 산악처럼 의젓하십니다
저는 객지를 떠도는 남사당 패거리
들마냥 안정을 못하는 게 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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