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의 바람소리에도 전율할만큼의 공포를 느낀다는「애덕의집」(서울 강동구 마천동 93~7) 김근영씨(안또니오)가 겨울의 문턱에서 쓰러져 사경을 헤매고 있다. 겹친과로가 결국 그를 쓰러지게 한것이다. 그가 병석에 눕는일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어쩐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어 몹시 우울하다. 만일그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한다면… 방정맞은 생각속에 그가 돌보아온 애덕의집 40여명의 공동체가 눈앞을 가로막는다.
김근영씨는 행려 환자들의 보금자리、애덕의집 원장이다. 원장이라지만 그가 지금까지 해온일은「원장님」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었다.「평신도」라는 위치때문에 평신도로부터 거부당하면서도 황소같은 끈기로 사랑을 구걸(?)、맨주먹으로 삶의 터전을 일구어냈던 그는 사랑을 얻기 위해서라면 못할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환자 뒷바라지하기、쌀값ㆍ연탄값ㆍ약값 구해오기、청소ㆍ집안일 처리하기、행려환자를 받아줄 병원구하기등등 그가 해야했던 일들은 실로 엄청난것들이었다.
82년 3월 오두막 전세집에서 5명의 환자와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된 애덕의집이 2년만에 비바람 막아주는 반듯한 보금자리로 성장할수 있었던것도(본보 83년 12월 18일字)열사람의 몫을 거뜬히 해냈던 김근영씨의 놀라운 의지력 때문이었다.
그 의지력도 병마앞에서는 무력하기만 했다. 애덕의집을 시작하기전 이미 병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던 그는 지난3년간「폐혈전증」「신부전증」「간경화」「간염」등 모두 7가지나 되는 병력을 안고 뛰었었다. 그 3년동안 쓰러진 횟수만도 10여차례. 입ㆍ퇴원을 반복하면서도 애덕의집을 떠날수 없었던 그는 지난 11월 결국 다시 쓰러졌다.
그의 쓰러짐은 애덕의집 40명 식구들이 같이 쓰러짐을 의미하고 있다. 때문에 주위의 충격은 그만큼 크고 깊을수 밖에 없다. 항상 땔감이 부족해 환자들이 추울까봐 겨울을 싫어하게된 그를 위해 지금 40명 공동체는 밤낮을 잊은 기도로 빠른 쾌유를 빌고 있다고 한다.
그가 다시 활짝 웃는 얼굴로「사랑」을 구걸할수 있다면、그래서 애덕의집이 추위에 떨지않을수 있다면、간절한 소망을 하늘에 띄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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