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들은 우리나라 자연을 비단결에 비유하여 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 예찬하였다. 그러나 이 비할데 없이 아름다운 말이 겨레가 긴 세월들 두고 모진 시련을 겪고 험난한 가시밭을 걸어오는 동안 차츰 그 빛을 잃고 이제는 지난날을 상기시켜주는 한낱 고어(古語)가 되어가는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 나혼자 만의 감회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江山은 지금도 예나 다름없이 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봄이 이토록 따사롭고 아름답고 마음을 들뜨게 하는 강산이 결코 흔하지 않을 것이며、여름이 이토록 싱그럽고 용솟음치고 생명에 가득찬 강산이 어디에나 있지는 않을 것이다. 또 가을이 이처럼 맑고 가냘퍼 사색에 젖게 하는 강산이 없을 것이며、겨울이 이처럼 깨끗하고 카랑카랑하고 짜릿한 강산이 다른데에 있을것 같지 않다.
봄이면 산에 들에 크고 작은 꽃이 있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고 오만가지 새들이 있어 그 소리를 가리지 못하는 강산. 여름이면 넓고 풍성한 잎사귀를 지닌 나무들이 밤을 지새우며 뜨거운 숨을 쉬고 뇌성벽력에도 꿋꿋이 서있는 소나무가 무성한 강산、가을이면 그림보다 아름다운 단풍잎을 비추는 햇살 그리고 발밑에 쌓이는 낙엽들이 우수수한 강산、겨울이면 눈발이 휘날리는 젖빛 하늘아래 말없이 서있는 낙엽진 나무들만의 강산. 이렇게 생각에 잠기다보니 마치 동화속에 살고 있는것같은 착각이 일어난다. 그렇다. 이것은 분명히 동화속으로 희미해져가는 현실이지 사실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모두의 가슴속에 살고 있는 바람이고 진실인것이다.
얼마전부터 일자리가 명동에서 강남으로 옮겨지면서 자연 출퇴근 길도 달라졌다. 동교동에서 강남까지 가는 길은 서너갈래가 있다. 이길저길 다녀본 끝에 한강(漢江)변을 따라 동서로 통하는 대건로와 강북로가 마음에 들어 조석으로 이길의 신세를 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길을 달리는 것이 그저 그런가보다 하였고、오히려 씽씽 지나가는 차량들이 신경을 건드리고는 하였다. 그러는 동안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느낌에 변화가 일어났다. 자욱히 깔린 안개속을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고 갈매기 나르는 모습이 나타났다. 어느새 조용히 흐르는 물위에 청둥오리의 무리가 평화롭게 떠있는 정경이 눈길을 끌게 되었다.
멀리 뚝섬 동쪽에서는 아침 해가 솟아오르고、江 남쪽에는 관악의 연봉(連峰)이 아침구름위로 그 아련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으며、강북쪽 저하늘 밑에는 북악의 봉우리가 우뚝 하지않은가. 이것이 우리 강산이다. 도나우를 보았고 라인을 보았다. 세느강변을 거닐었고 테임즈강가를 걸어보았다. 그러나 그 어떤 강보다도 한강은 아름답고 위대하다.
하이네가 읊은 로렐라이의 석양도 보았고 나폴리만과 미닐라만에 지는 석양도 보았다. 그러나 이 모든 석양이 한강 저편 서해로 저녁놀 속을 빨갛고 둥그렇게 저물어가는 저 석양처럼 아름답지는 않았다. 이 겨레의 강산은 지금도 예나 다름없이 아름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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