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이 딸보다는 아들낳기를 더 원한다는 사실、즉 남아선호도(男兒選好度)가 높다는 사실을 이미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진 일이다.
실제로 그동안 실시된 여러 사회조사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엄마ㆍ아빠가 원하는 아들수는 딸의숫자 보다 대체로 평균 한명 정도가 더 많다.
물론 아들을 딸보다 더 좋아 하는건 비단 우리나라 사람들 뿐만은 아니다.
이런일은 서양 여러 나라에서도 볼수 있고 특히 이웃 중국이나 인도같은 나라는 거의 우리만큼이나 아들을 더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가령 우리와 아주 가까운 위치에 있는 일본의 경우 거의 이런성별 선호에 차이가 없는것으로 돼 있고 유럽의 벨기에 같은 나라는 오히려 여자아이를 더 원하는 대표적인 나라로 꼽히고 있다.
아무튼 나라마다 그들이 더 좋아하는 성별 구분이 조금씩은 있는것이 사실인데 우리나라의 남아 선호사상은 가히 세계적인 것에 속한다.
출생시의 아들과 딸의 비율을 생물학적으로는 출생성비(出生性比)또는이차성비(二次性比)라고 부른다.
원래 이 출생성비는 여자아이수를 100으로 했을떄 남자아이수가 106정도로 다소 높은게 보통이다.
이것은 태어난 아이들이 자라면서 겪게되는 사망경험에 있어서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보다 더높고、따라서 결혼 적령기쯤에는 그수가 엇비슷하게 되도록 하기위한 조물주의 신비스런 섭리로나 생각되는 일중에 하나다.
그런데 최근 미국 어느 사회학자가 분석한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 만일 부부가 원하는 대로 아이들의 성을 구별해서 낳게 된다면 그성비가 무려150정도에 이를게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딸아이를 100명에 대해 아들이 150명꼴로태어나게 될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아들 선호사상이 얼마나 높은지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한가지 좋은 예다.
어떤 사람들은 그래도 전에 비해서는 이런 남아 선호 사상이 많이 줄어 들었다고 보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그렇지도 않다.
왜냐하면 지금은 아이를 하나나 둘정도만 낳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어떻게든 이들중에 하나는 아들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더욱 강하게 갖고있는사람들이 늘어가기 때문이다.
이런일은 요즘 소위 아들낳는 방법이라는 것들을 찾아 거의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엄나들의 수가 많다든지또 이런 엄마들이 노력중에 실로 웃지못할 촌극같은 얘기들이 있는 것만봐도 알수가 있다 시골을 다니면서 아들낳은집 대문에 걸어둔 새끼줄속의 고추를 몰래 빼다가 삶아 먹는다든지、임신전후 일년내내 야채만을 먹은 나머지 엄마는 물론 태어나는 아기마저 영양실조 상태에 빠지고마는 일등이바로 그 좋은 예다.
물론 이런 일은 그저 웃어 넘길 수도 있고、또 이렇게 해서라도 아들을 낳고 싶어하는 엄마들의 마음을 이해해보려고 애쓸수도 있는 일이지만 문제는 아들 낳는 일을 위해 아주 큰 잘못까지 저지르는 일 또한 요즘은 적지가 않다는 사실이다.
그 한가지 예가 소위 태아성변진단이라는 것이다.
양수(羊水)검사라고도 불리우는 이태아진단은 임신 약 4개월쯤 되있을떄 태아의 세포가 떠있는 자궁속 양수를 떠서 그 아이가 아들인지 딸인지를 현미경으로 구별하는 일이다.
이렇게 해서 그아이가 아들이면 그대로 임신을 유지하지만 딸이면 유산을 시켜 버리는 일에 이 기술이 적잖이 쓰이고 있는 것이다.
아들이 꼭필요 하다고 느끼는 부부의 마음은더없이 절실한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사람들이 아들 낳기를 해 애쓰지만 이제까지 초생 성비와의 관련요인들에대한학문적 연구결과는 결국 아들 딸의 결정이나 임신전과정이 하나의 신비라는 사실만을 깨닫게 해줄뿐이다.
말하자면 일위적인 어떤것도 이일에 관해서는 선(善)이 아닐거라는 지혜만을 얻게되는 것이다.
더구나 공동체 의식이 더욱더 강조되는 현대사회에서는 개인의 어떤선호사상이 사회질서에 미칠 영향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인데 이런의도적 노력들에 의해 성비가 크게 깨어질때 몰고올 사회적 문제는 또 여간 심각한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어느 사회학자의 연구결과를 인용하자면 성인층의 남녀 성비과를 인용하자면 성인층의 남녀 성비가 110만 돼도 결혼제도는 깨지기시작하고 온갖 매음과 동성연애 그리고 독자와 범죄가 크게 증가하게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결국사회는더이상인간적인아름다움을 잃고 말것이라는것이다. 현실적인필요성에따라선만 사람이 살려고 할때 그것은 결국 사람을 행복하게 하기보다는 더욱더 불행하게만한다는 사실은참으로신기하기만 하다. 그리하고이런 사실이 종래는신의섭리와그자연적 질서의 위대함으로인식되게마련이라는것은 더욱더 신비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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