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은 초기 교회를 세운 순교 선조들이 치명을 당하신 신유박해 2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희망의 삼천년 새날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로서 올해는 우리 신앙의 뿌리인 선조들과의 진솔한 만남을 지니자고 제안해 본다.
흔히들 한국 교회를 자랑할 때 평신도가 세운 교회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정작 자랑은 하지만 신앙의 선조들인 초기 순교자들을 우리는 우리 교회 안에 제대로 모시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러한 우리의 현실을 제대로 보고 초기의 순교자 영성을 윌 교회에 뿌리내려 그 분들의 맥을 이어가는 제자리 찾기 운동을 하는 것이 바로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몫이 아닌가 생각한다.
초기 교회의 일원으로서 한국 교회의 초석을 놓았던 이벽, 권일신, 또 최초의 교리서를 지은 정약종 최초로 한국 땅에 사제를 영입했던 윤유일, 동정 순교자이셨던 이순이, 최초의 여성 회장이셨던 강완숙 등등 초기 순교자들은 200여년전 우리 교회가 있을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친히 준비하셨던 은총의 선물이며 일천한 크리스탄 지식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온 몸을 던져 신앙을 증거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히 성령께서 그 분들과 함께 하셨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1984년 교황님을 모시고 한국 천주교 전래 200주년 기념행사를 했었다. 그 때 온 교회는 선교 순교 성인들을 기리면서 신앙대회를 열었고 영광스러운 우리 선조 103위께서는 시성 되시는 기쁨을 누렸다. 그 때 교황님께서는 우리 신앙 선조들이 하느님께 얼마나 충성스러우셨는지 사도로부터 이어온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얼마나 피땀어린 노력과 형극의 길을 가셨는지 감동스럽게 표현해 주셨고 또 시성식을 마치고 떠나실 때는 『여러분의 선조들은 할 일을 다하셨습니다 이제는 여러분의 차례입니다』하고 격려하셨던 말씀이 기억이 난다.
우리 신앙의 뿌리 역할을 하신 선조들의 믿음 위에 교회를 짓자.
자고로 될 집안은 그 집안의 자식 농사가 잘 되어야 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교회가 잘 되려면 교회의 구성원들이 각각 저다움을 지녀야 한다.
바로 그 모범이 우리나라의 초기 순교성인들이라고 본다.
여기서 우리는 선조들의 삶과 믿음을 되새겨 보면서 또한 그 분들이 해 놓으신 업적을 연구하고 분석하여 오늘의 교회에 필요한 영적인 영양분을 확대 재생산해 낸다면 우리의 미래는 하느님 안에서 희망이 가득차리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될 때 신유박해 순교 2백주년은 또 하나의 은총의 때가 되리라고 본다.
우리 신자들은 대개 일년에 한 두번은 성지를 찾아 순례를 한다. 함께 가다보면 갈 때는 열심히 기도하고 가는데, 올 때는 실컷 놀면서 오니 거룩함의 기운은 다 빠져나가는 것 같다. 순교성지도 순교자도 모르고 순례의 의미도 모르는 사람들처럼 일회성 스트레스 해소용 순례 같다. 선조들은 매를 맞아 피를 흘리고 칼에 맞아 죽으셨는데, 그런 신앙의 열정과 덕을 본받고 살자고 마음먹고 오는 것이 순례인데 하느님 대신 세속이 어느덧 마음속에 들어오는 것을 보면 문득 헛걸음하고 돌아오는 느낌이 드는 때가 많다. 이제는 순례 문화도 정착할 때가 아닌가 본다.
일전에 스페인의 성지인 산티아고에 순례를 한 적이 있다. 그 곳은 예수님의 제자이신 야고보 사도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세계 3대 성지라고 흔히들 얘기하는 곳인데, 그 곳에 온 순례자들의 기도의 모습과 구도의 모습, 또 며칠씩 걸어서 300㎞나 되는 곳을 걸어서 순례를 했단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순례의 행보를 되새겨 보았다. 루르드를 비롯하여 서양의 성지는 모두 어떤 거룩함의 분위기가 전달된다. 차분하고 신선하고 주님을 향해 하늘을 향해 열린 모습, 평화로운 느낌.
우리의 성지와 순례문화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자. 순례를 한 번 하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경건한 마음으로 순교성인들의 삶과 믿음 안에서 하느님을 체험하며 제대로 해보는 순례를 가져봄이 어떨까?
윤유일 바오로 순교자는 자기가 믿는 믿음이 참된 것인지 그 진리가 참된 것인지 천주교회의 가르침이 참인지 확인하러 북경까지 왔다갔다했다고 한다.
이러한 선조들의 믿음이 자세를 되새겨 보며 새 하늘과 새 땅을 열겠다는 각오로 우리 선조들과 한마음이 되어서 거듭 태어나는 신앙의 신비에 동참함이 이 한 해에 주어지는 또 하나의 은총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우리 선조들은 두 주인을 섬기지 않았다. 우리 역시 하느님의 선물이셨던 우리 선조들의 뜨거운 믿음과 교회 사랑과 충성스러운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고백을 선물로 청하면서 새해를 맞이하였으면 하는 것이 나의 작은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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