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가 시작되었다.
이제 우리는 다난했던 20세기의 역사를 마감하고 명실공히 새로운 세기를 맞아 그 첫걸음을 내딛었다. 출발이란 언제나 설렘을 가져다 준다.
새롭게 펼쳐질 백년의 지평을 내다보는 우리의 가슴 또한 새로운 희망과 기대로 설렐 수밖에 없다.
작년 이맘때 우리는 밀레니엄 신드롬이라고 할 만큼 들뜨고 흥분한 상태에서 한 해를 맞이했었다.
갈등과 경쟁이 필연적
휘두르기만 하면 뭐든지 척척 이루어지는 도깨비방망이나 되는 것처럼 밀레니엄에 대한 기대는 컸었고, 새롭게 그려보는 세상 또한 화려했었다.
그러나 한 해를 보내고 난 지금의 상황은 어떤가?
과연 작년 초에 품었던 장밋빛 기대는 그대로 이루어져 가고 있는 것인가?
많은 매체들은 우리가 처한 현실을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나름대로 난국을 불러온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들도 더러 내놓는다.
그러나 그러한 분석이나 처방들이 위치와 입장에 따른 약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거의가 「네 탓」아니면 「떠넘기기」라는 우리 사회의 고질을 고스란히 바탕에 깔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다.
본질상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이해가 상충된 여러 집단의 집합체이므로 갈등과 경쟁은 필연적이다.
문제는 이처럼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여러 종류의 갈등 양상을 공동선의 입장에서 슬기롭게 대처하고 풀어나가야 하는 역할과 책임 또한 사회 구성원인 우리 모두의 몫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를 의식하지 못하거나 또는 일부러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근래 여러 매체들을 장식했던 큰 목소리들은 한결같이 그러한 우려를 낳기에 충분한 것들이었다.
잘못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사회의 편견은 모든 잘못의 원인을 언제나 「나」아닌 「네 편」에 두고 있다.
그 바탕에는 물론 「내 편」아니면 모두가 「적」이라는 식의 이분법적 편가르기 도식이 바위처럼 깔려있다.
진정한 공동선 추구
서로가 서로를 비방하고 탓하는 데에서는 문제의 해결책이 나올 수 없다. 끝없는 비방의 소용돌이만 더욱 거세어질 뿐이다.
구두선처럼 외치는 공동선을 진정으로 추구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먼저 과감한 사고의 전환을 이룩해야 한다.
우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이성과 양심의 거울로 겸허하고 적나라하게 비춰보는 자기 성찰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위치나 능력이 과대 포장된 것은 아닌지, 삶의 기대나 목표치가 지나치게 높게 설정된 것은 아닌지, 그리고 자신의 삶이 진정으로 공동선에 기여할 수 있는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 것인지를 찬찬히 되새겨 봐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뼈야픈 성찰을 바탕으로 하여 지금까지 「남의 탓」으로 돌렸던 모든 잘못의 원인을 바로 내 자신의 삶 속에서 찾아내고 이를 과감하게 고쳐나가는 자기 혁신적인 실천이 뒤따라야 하는 것이다.
모든 잘못의 진정한 시정은 「남」이 아니라 바로 「나」로부터 비롯되어야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기가 활짝 열렸다.
새 세기에는 첫해부터 날마나 「제 탓입니다」를 되새기면서 자신의 잘못을 먼저 고쳐나가는 하루하루가 될 수 있도록 좀더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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