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격언에 『공짜 점심은 없다』라는 게 있다. 철저한 개인 본위의 사회를 운영하고 있는 까닭에 남이 사는 점심은 반드시 무슨 부탁이나 조건이 없을 리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어렵게 살다보니 우선 먹고 보자는 얘기이다.
서양과 한국, 국가성장의 배경이 다르고 국민이 살아온 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생긴 대조적인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다.
칼날같이 따지는 네것 내것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완전히 성숙되어 정착된 사회에서의 삶이란 현재 우리 기준으로는 별로 재미있는 게 못된다.
미국 어느 중소도시에서 일가를 이룬 어느 중산층 소시민의 생활을 생각해보자.
우선 해마다 자기 소득은 성실히 계산하여 세무당국에 신고하여야 한다. 현금보다는 수표사용이 상용화된 때문에 자신의 소득을 숨길 수도 없다.
주일날에는 온 식구가 정장을 차려입고 교회를 가야 한다. 비록 그 전날 부부싸움을 했다 하더라도 부부가 사이좋은 듯 미소를 띄우고, 아들이 다니는 학교의 PTA(학부모) 모임에는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 연말에는 자선 단체에 기부금 낸 것을 종합해보고, 자기 소득에 맞지 않게 적었으면 서둘러 조금 더 내야 한다. 주말이면 지붕도 고치고 마당의 잔디도 깎고 차도 손보는 모습이 동네 사람들의 눈에 띄어야 한다. 저녁에는 한잔하고 싶어도 절대로 취한 듯한 모습을 동네 사람들이 보아서는 안된다. 그래서 많은 술꾼들은 집에서 마실 수밖에 없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그 동네에서 요즈음 흔한 말로 왕따 당해야 하고 심한 경우는 자신의 사업과 신용에까지 영향을 받는다. 이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정착된 사회의 중산 시민층의 생활이다.
우리 기준으로 보면 무슨 재미로 사나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성장하여 일가를 이룬 뒤 이민간 사람들 중 남자들은 이런 것 때문에 좌절을 겪는다. 이런 사회이고 보니 『공짜 점심은 없다』는 당연한 것이다. 자기가 받아야 할 것은 어떻게 해서든 받아내지만 받지 말아야 할 것은 칼날처럼 거절한다. 그것이 단돈 10센트라도 말이다.
외상이면 소도 잡아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고 공짜면 양잿물도 마신다. 아무리 나라의 경제 사정이 어려워도 서울 이른바 강남의 유흥가는 번창한다. 「술먹이는 사회」란 표현이 있듯이 유능한 직장인은 대인관계가 원만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술을 잘먹고 잘놀아야 한다. 2차 3차를 가야만 하고 결국은 코가 비뚤어져야 한다. 권하는 사람이나 마시는 사람이나 공짜 수입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지난해 낙하산 인사로 문제가 되었던 국공영 기업의 경우를 보면 노조가 결사반대를 선언하고 저지투뱅을 벌이고 있는데도 정부는 태여하게 임명했다. 그러면 출근저지니 뭐니 하면서 농성투쟁까지 벌였는데 막상 출근을 하기 시작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해진다. 공기업 감사 결과에 따르면 그때마다 새로 임명된 사람에 이의를 달지 말라고 거액의 상여금 따위가 지불된 예가 발견되었다. 역시 공짜를 좋아하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사실 우리나라의 급여구조를 보면 이해못할 일이 하나 있다. 이익도 못내는 회사가 상여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상여란 문자 그대로 남는 것을 주어야 마땅한데 이익을 남기지도 못한 기업이 몇백%씩 상여금을 주고 있고 이익을 남기는 조직도 아닌 국가기관마저 이런 풍조를 따른다. 사기 진작과 생활보조를 위한 것이면 명칭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생활은 무미건조한듯 해야
우리도 이제는 국민소득이 1만불을 육박하고 등록된 자동차 대수가 1000만대를 돌파했고 무역고도 세계 10위권에 드는 나라가 되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정착에 성공한 나라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성숙한 민주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숫자의 건전한 중산층이 자리잡아야 하고 자본주의적 윤리에 투철하자면 자기 것이 아닌 것은 절대로 소유해서는 안되고 말초적인 즐거움보다는 우미건조한 긋 하지만 윤리와 도덕이 생활규범으로 자리잡아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렇게 될 때 비록 정보사회가 되었다고 굴뚝산업은 포기한 듯한 분위기가 팽배해도 생산만은 그치지 않아 경제는 제대로 굴러갈 것이고 명동성당에서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단식 농성을 벌여도 그리 불안하지는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라나는 세대의 학교교육이 실패하는 듯 싶어도 건전한 가정에 기대를 걸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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