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로마의 성심대학이 태반은행을 출범시켰다는 소식을 보도로 접했다. 인간배아복제에 대한 대안으로 태반과 뱃줄을 이용한 연구를 통해 치료목적의 줄기세포를 확보하려는 의도에서 태반은행이 시작된 것이다. 3년 전 영국에서 체세포 복제방법에 의한 복제양 「돌리」가 만들어진 이후 이 분야의 연구는 끊임없이 진행되어 결국 인류는 인간배아복제라는 판도라의 상자 앞에서 고민하게 되었고, 윤리적 찬반 논쟁은 그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이미 지난해 12월에 영국에서는 치료목적의 배아복제를 허용하는 법이 통과되었고 세계는 이를 둘러싼 윤리적 찬반논쟁이 매우 거세다. 물론 가톨릭교회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인간배아복제를 반대한다. 비록 인간배아복제를 통하여 필요한 인간 장기를 양산하고, 지금까지 인류가 극복하지 못한 여러 불치병의 극복을 위해 필요한 의약품을 생산하여 인류의 생명과 건강 증진을 위해 획기적인 기여를 한다고 해도 인간배아를 인간으로 보는 가톨리교회는 인간배아의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는 이 방법을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이다.
곧 가톨릭교회의 윤리는 아무리 좋은 목적을 지향하는 행위라고 하더라도 그 행위의 수단이나 방법이 악하다면 그 행위는 악하다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로마 3, 8 참조). 인간 생명을 살리기 위해 또다른 인간 생명을 희생시키는 일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이론이다.
인간배아복제 허용의 문제는 이렇듯이 직접적으로는 인간존엄성의 존중이라는 차원에서 윤리적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이러한 때에 가톨릭교회는 인간배아복제에 대한 대안으로 태반과 탯줄을 이용한 연구를 제시하기에 이른 것이다. 국내의 여러 언론은 가톨릭교회가 태반은행을 허용하는 것에 대하여 윤리적 논쟁을 피해가기 위한 일종의 타협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필자는 그것이 타협이라기보다는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태반이나 탯줄은 인간배아처럼 생명은 아니다. 그것들은 출산후 추출물로서 당연히 인간 신체를 다루는 것처럼 정중하게 다루어져야 하겠지만 인간생명의 증진에 이용된다면 이 역시 인간 존엄성 존중의 한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교황 비오 12세는 이미 1956년에 조직 및 장기기식을 위해 사체 이식의 가능성을 말씀하셨지만 이러한 사체 이식이 인간 존엄성을 훼손시키는 일은 아니지 않는가?
인간배아복제만이 만능이라고 여기는 과학자들이라도 가톨릭교회의 이러한 시도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비록 복제배아에 비해 치료를 위한 줄기세포의 양은 적지만 태반과 탯줄에서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면 이 방향의 연구는 당연히 지금까지의 수많은 윤리적 논쟁에 종지부를 찍으면서 인간 존엄성을 존중하고 드러내는 연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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