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거의 신경질적이다 싶을 정도로 TV드라마를 싫어한다. 거기다 눈물까지 짜내는 멜로까지 합세하면 거의 혐오(?)하는 수준에 이른다. 어릴 때도 온가족이 한데 모여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어머니가 인기드라마를 방영하는 채널로 돌리면 열이면 열 투덜대며 딴 놀이거리를 찾곤 했다.
개연성이 거의 보이지 않는 주제나 산으로 가는 스토리, 억지스런 내용까지는 어떻게 근근이 견뎌본다 해도 부조리와 불의를 ‘영웅’이나 ‘성공’이란 단어와 대치시켜버리는 앞에서는, 어떤 유별난 정의감이 있는 게 아닌데도 보기조차 힘겨워질 때가 많았다. 그런 드라마에, 주인공의 부침에 따라 박수를 치기도 하고 혀를 차는 어머니 모습에 짜증을 내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요즘 한 공중파 방송에서 방영하는 ‘미스 리플리’라는 드라마가 인기인 모양이다. 드라마에 알레르기가 있다시피 한 필자로서는 일부러 찾아 ‘본방사수’를 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지만 인기가 있다니 주위 얘기에 끌려 어깨너머로 슬쩍슬쩍 넘겨다본 적이 있다. 이 드라마는 호텔을 배경으로, 화려한 성공과 실패 속에 감춰진 인간의 욕망과 사랑을 담아낸 전통 멜로드라마를 표방하고 있다.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은 돈도, 학벌도, 운도 없는, 그래서 부당한 일을 당해도 도망치거나 참는 것으로밖에 세상에 응전할 방법이 없는 낯익은 우리 이웃의 딸이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우연히 거짓말을 하게 된다. 그런데 우습게도 단순한 거짓말 한마디에 아무리 노력해도 열리지 않던 문들이 활짝 활짝 열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결국 주인공이 발견한 현실은 굳게 믿었던 도덕교과서의 내용과는 전혀 딴판으로 속는 사람이 바보고 속이는 사람이 웃는 승리의 법칙만이 존재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이런 드라마가 왜 인기를 끄는 걸까. 아마 지금 당장은 거짓말쟁이가 더 신뢰를 얻고 나쁜 사람들이 더 많은 걸 누리는 부조리한 현실을 눈앞에서 까발리고 끝내는 그런 삶이 파탄을 맞을 것이라는 기대심리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드라마에서 사회는 여전히 거짓말을 권하는 부조리투성이 세상처럼 보인다. ‘성공’이라는 목표 앞에 거짓말은 성공의 계단쯤으로 치부되며 세상살이에 있어 훌륭한 도구로까지 포장된다.
이 드라마에 뜬금없이 등장하는 ‘리플리’는 전설적인 미남배우 알랭 들롱이 주연한 프랑스영화 ‘태양은 가득히’(1960)에서 주인공의 극중 배역인 톰 리플리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영화에서 가난한 청년 리플리는 부잣집 친구를 죽이고 그의 대역을 하는데 그의 이름은 친구를 모사, 복제(replicati on)하는 역할을 암시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이름을 딴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게 있다. 자신이 바라는 세상을 진짜로 믿고, 현실을 부정하여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정신병리 현상을 말한다. 리플리 증후군에 빠진 사람은 드라마나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신분 상승 욕구에 사로잡혀 거짓말을 밥 먹듯 하다 결국은 자기 자신마저 속이고 자신만의 환상 속에서 살게 되는 인격 장애를 일으키게 된다. 이들은 자신이 한 거짓말마저 사실로 믿기 때문에 스스로 거짓말을 인식하지 못한다. 당연히 자신이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 때문에 결국 자신이 내뱉은 거짓말이란 성에 갇혀 스스로를 질식시켜 죽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 사회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미스 리플리, 미스터 리플리들이 넘쳐나고 있다. 왜 그럴까. 답은 단순하다. 그리스도의 눈으로 바라보고 판단할 줄 아는 그리스도적 감수성이 약하기 때문이다. ‘미스 리플리’는 거짓말로 만들어지는 달콤한 세상이 곧 악마가 안겨주는 독배라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들려주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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