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여성들이 술자리에서 가장 싫어하는 이야기는 ‘군대’와 관련된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남성들이 군대 이야기만 나오면 추억을 떠올리며 서로간의 무용담 등을 신나게 말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는 헌법 제39조 1항에 따라 국방의 의무를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로 간주하기에, 대다수의 한국 남성들은 젊은 시절 군대 체험을 갖게 된다. 최근 발생한 해병대에서의 끔찍한 사고 소식을 들으면서 참으로 가슴이 아팠다. 피해자뿐 아니라 가해자도 자신의 젊음을 바쳐 국방의 의무를 준수하는 시기에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국방의 의무를 진다는 것은 외적인 공격에 의해 국가를 방어하는 것뿐 아니라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톨릭교회도 한 나라가 무력을 사용하여 정당하게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군대와 군대 복무가 필요하다고 가르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사목헌장 79항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조국 봉사에 몸 바쳐 군대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국민의 안전과 자유를 지키는 역군으로 생각하여야 한다. 이 임무를 올바로 수행할 때에 그들은 참으로 평화 정착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가 펴낸 ‘간추린 사회교리’에 의하면, 군사 행위는 평화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평화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선사하신 선물이며 “주님은 평화”라는 말씀(판관 6,24)처럼 하느님의 근본 속성인 것이다. 곧 평화는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획에 대한 인간의 순명을 내포하기에 생명의 충만함을 드러낸다.
따라서 평화는 하느님이 원하시는 질서의 추구를 통해 날마다 조금씩 이룩되는 것이고, 모든 사람이 평화 증진에 대한 책임을 인식할 때에만 꽃필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평화가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하며, 정의와 사랑에 기초한 질서의 확립을 요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달리 말하면, 평화가 모든 사람의 마음 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가치로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바라볼 때, 최근 발생한 군대에서의 참사는 단순히 ‘신세대의 부적응 탓’으로 돌릴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물론 군대라는 조직은 계급사회이기에 상명하복의 정신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정신 역시 인간의 존엄성을 담보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제1차 이탈리아 군종교구 시노드’에 의하면, “군에서 계급은 자기에게 맡겨진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상징하는 것이며, 지휘한다는 것은 단지 명령을 하달하는 것만이 아니라, 수하 군인들에게 모범을 보이고 그들과 한데 어울리면서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책임져 주고 이끌어 주는 것이다. 지휘란 곧 봉사라는 것과 복음서에 의하면 첫째인 사람은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바로 여기에 새로운 병영문화를 만들 수 있는 기초가 있다. 누군가의 선임이 된다는 것 혹은 누군가를 지도한다는 것은 자신의 권한으로 그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그에게 봉사한다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지금 내 앞에 있는 자를 진정 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비록 내 자신보다 군대 생활을 늦게 시작하여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 하여도 그를 참된 인간으로 바라보며 그의 존엄성을 인지하는 것이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사회적 존재이기에 동료 인간과 협력해야 할 필요성을 깨닫고, 그들과 지식과 사랑의 친교를 나눌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본성에 기초할 때, 군대의 고유한 덕목인 힘과 용기는 공동선의 의지를 지지하며, 결코 증오로 촉발된 폭력으로 전락하지 않을 수 있다. 조국을 수호한다는 단순하지만 숭고한 의지로 군대에 오는 젊은이들을 바라보면서 군대 책임자들은 “무엇을 찾느냐?”(요한 1,38)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젊은 시절에 찾고 있는 것이 그리고 일생동안 간직하고자 하는 것이 다름 아닌 생명과 정의와 평화의 가치임을 제시해야 한다. 고귀한 이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장으로 거듭 태어나는 군대이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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