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을 할 수 있는 아무런 꼬투리도 없다. ‘삼세번’인데 설마 이번에도 안 될까, 이런 정도가 기댈 수 있는 심리적 근거의 전부다. 세상일 누가 알아. 재수 없이 또 안 된다면? 문제의 심각성이 직접 뛰는 무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까지 절실하게 전파되어 온다. 이번에도 안 되면 강원도는 말할 것도 없고 모두가 다 거덜난다더라! 이것 야단났구나!
7월 6일 나는 6박 7일의 발트3국 관광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돌아가서 보면 기쁜 소식이 이미 와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기쁜 소식 들을 때까지 마음 졸이는 절차를 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이러한 안이한 기대도 가져봤으나 다 소용없었다. 한국시각으로 7일 0시가 지나서 국제올림픽위원회 자크 로제 위원장이 남아공 더반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직접 발표를 할 때까지는 그야말로 아무도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할 수 없다. ‘정공법’으로 기다려야지! TV 앞에서 약 한 시간 동안 바쳐야 할 절차상의 제물은 꼬박 다 바쳤다. 환호의 순간을 상상하는 설렘. 만에 하나 최악의 경우에 생각이 미칠 때의 그 불안감과 두근거림…
마침내 로제 위원장이 봉투에서 2018년 동계 올림픽 개최지를 적은 문서를 봉투에서 꺼내는 순간이 왔다. 우리가 모두 함께 겪은, 절대적 긴장의, 희망과 절망이 뒤섞여 소용돌이치는 그 순간이.
평창! 이것이었다! 됐다! 아이고, 가슴아! 질풍처럼 돌아가 딱 정지하여 만천하에 드러난 역사적 사실. 터지는 눈물이 볼을 흘렀다. 나만 그러하였겠는가. 다 울었다. 모처럼 온 겨레가 하나되는 순간이었다.
다음날 아침 신문들이 이 감격스러운 순간을 어떻게 보도할까 하는 것이 궁금했다. 한 신문은 ‘평창, 세 번째 눈물은 환희였다’였고, 또 한 신문은 ‘평창, 위대한 승리’였다. 그렇지. 이런 정도가 사람이 표현할 수 있는 표현의 한계지.
이번에 내가 또 특히 감격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이번 일에서만은 온 국민이 문자 그대로 하나가, 한 마음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는 장점에 비해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일이, 무슨 일을 일치단결하여 하는 일이 서투르다. 우리 국민이 고쳐야할 단점이 바로 이 점이 아닐까. 남의 좋은 일을 흔쾌히 기뻐해주는 아량이 좀 부족하다. 공연히 트집을 잡는 경우도 없지않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만은 그렇지 않았다. 여도 없고 야도 없었다. 노(勞)도 사(使)도 없었다. 대통령을 비롯한 관(官)도 민(民)도 없었다. 한마음이다. 이렇게 하나가 되어본 적은 아마 대한민국 건국 이래 처음 아닐까. 거의 기적적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두 번의 뼈아픈 실패가 우리의 마음을 겸허하게 만든 것일까.
또 하나 내가 확실히 느끼는 것은 우리나라의 국운이 틀림없이 상승곡선을 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느님이, 천지신명이 우리나라를 어여삐 여기시는 것이 확실하다. 이것이 나의 느낌이다.
이러한 감격의 와중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묘한 독백을 해버렸다. 나는 ‘평창은 보고 죽자.’ 이렇게 중얼거린 것이다. 이 말의 뜻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기왕에 이렇게 됐으니 2018년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이 성대하게 열리고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광경까지 보고 죽었으면 좋겠다는 염원이다.
나는 지금 만으로 81세니까 2018년의 평창까지 보려면 88세까지 앞으로 7년을 더 살아남아야 한다. 그게 쉬운 일인가. 내가 지금 성한 정신으로 하는 소린가? 치매기가 섞인 보기 흉한 노욕(老欲)이 발동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실은 나의 바람(希望)은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 해 (2018년에) 용평의 설원에서 내가 여전히 스키를 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기까지 바라는 것이 나의 진심인 것이다.
내가 하느님을 시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그렇게 오래 건강을 누리기 위해 나는 더욱 절도 있는 생활을 할 것이다. 희망은 내가 하고 허락은 하느님이 해주신다. 좋은 목표가 생겨서 기분 좋다. 나는 하루하루가 즐겁고 좋은 나날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