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들어 형사소송법상의 명예훼손 사건이 일반인들에게도 매우 친숙한 일이 되어버렸다. 피해자로서 고소를 제기하는 쪽은 정치인·장관을 비롯한 고위공직자·일선 정부기관의 간부·언론사 간부 등이고, 가해자로 고소를 당하는 쪽은 언론사와 언론사 종사자·일반 개인들이다.
언론사나 언론사 종사자들이 정책을 비판하거나 어떤 사실을 발설하고 의혹을 제기하는 경우, 당사자들은 그 내용이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시켰다면서 고소를 한다. 개인들도 신문 기고문이나 방송 출연자로서 발언한 내용, 인터넷·SNS 등을 통해 밝힌 자신의 의견 때문에 마찬가지 일을 당한다. 사소한 말 하나하나도 꼬투리잡고 고소하다 보니 구체적인 사례들이 끝이 없을 정도다.
이렇게 되면 판결을 떠나서 고소당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피고소인은 상당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고, 소송 진행에 따라 그 스트레스는 더욱 가중된다. 더구나 힘없는 개인이 힘있는 개인이나 기관을 상대해야 하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구속까지 될 수 있다. 거기다 수사기관은 명예훼손 고소 사건을 우선적으로 수사함으로써 언론인이나 개인이 제기한 비판이나 의혹자체는 뒷전으로 밀려나 버리고 만다. 이런 이유로 명예훼손 소송의 남발은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킨다.
형법 307조는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그리고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해 놓고 있다. 이 규정에 따르면 특정인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가 침해될 가능성이 있는 사실을 누군가가 말하면, 그것이 진실이라도 명예훼손죄에 해당된다. 허위 사실일 경우 죄가 더 무거워진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대중매체를 통해 허위 사실을 거론하면 죄는 또 더 무거워진다.
다만 거론된 이야기가 사실이며 공공적인 것이고, 거론한 사람의 주된 동기나 목적도 공공적이라면 명예훼손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때 피고소인은 첫째 자신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것, 둘째 그것이 객관적으로 공공적인 것이며, 셋째 자신이 그것을 거론한 행위도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라는 점을 소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를 다 소명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명예훼손의 적용범위는 거의 무한대로 넓혀져 있다. 그리고 이렇게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명예훼손죄가 정부 입장이나 정책에 동조하지 않는 의사나 표현을 차단하고 공격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프랭크 라뤼 의사표현의 자유에 관한 UN 특별보고관은 지난달 ‘제17차 UN 인권이사회’에 제출한 한국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명예훼손과 인터넷상 의사 표현의 자유, 선거전에서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국가안보를 이유로 하는 표현의 자유 제한, 공무원의 의사 표현의 자유, 언론매체의 독립성, 국가인권위원회 등 8가지 분야에서 한국의 인권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개정을 권고했다. 라뤼 보고관은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사건, 언론사 광고 불매운동을 한 네티즌 24명 구속 사건 등을 표현의 자유를 제약한 사례로 꼽았다. 특히 명예훼손죄에 대해서는 ‘국제적 동향에 맞춰 형사상 명예훼손죄를 삭제하고, 공무원과 공공기관들이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공무원, 공공기관 및 기타 유력 인사들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언론의 자유, 창작의 자유, 사이버 공간상의 표현의 자유, 이 세 가지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굳건한 기둥이다. 그 기둥이 명예훼손죄 소송의 남발로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고, 그 기둥 위에 자리잡은 민주주의도 위협받고 있다. 라뤼 보고관의 권고는 실현될 수 있을까? 그 답은 결국 언론인들이나 예술가들, 그리고 네티즌들에게 달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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