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한국을 방문한 앨빈 토플러(Albin Toffler)는 제3의 혁명을 정보와 유전공학의 혁명이라고 했다.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이 21세기 새해 벽두부터 매스컴을 통해 우리의 눈과 귀를 의심하게 하는 소식이라면 인간 게놈(genome) 지도의 완성과 인간복제라는 소식이다.
이 두 가지는 모두가 유전공학이라는 학문의 발전이 가져다 준 중요한 사건이다. 그래서 모두가 곧 모든 병에서 해방되고 복제인간을 통해 인간이 불멸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과 흥분을 사람들에게 주고 있다.
이런 이유로 유전공학이 마치 신흥종교처럼 세상에 군림하려는 위험스러운 움직임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인간복제는 지난 세기만 해도 공상과학에서나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것이 이제 세기가 바뀌어 새로운 세기의 획기적인 사건으로, 그리고 새로운 세기의 인간이 만든 바벨탑으로 자리 잡으려고 하고 있다.
지난 1월 22일 영국 상원은 연구 목적으로 인간배아 복제를 허용하여 충격을 주었고, 미국의 파노스 자보스(Panos Zavos) 교수와 이탈리아의 세베리노 안티노리(Severino Antinori) 박사가 12~24개월 안에 복제인간을 탄생시킬 것이라고 했는데, 이번에는 캐나다 종교집단 「라엘리안 무브먼트」의 지원을 받고 있는 클로네이드(Clonaid)사가 연말까지 최초의 복제인간을 탄생시키겠다는 것이다.
라엘리안 무브먼트와 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인 부부가 태어난 지 10개월만에 사고로 숨진 딸을 복제해 달라며 100만 달러를 클로네이드에 건네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라엘리안 무브먼트는 2만5000년 전에 외계로부터 온 과학자가 유전자 조작을 통해 인간을 탄생시켰다고 믿고 있는 집단으로서 그들은 자녀를 얻지 못한 사람들과 자녀들의 사고나 질병으로 잃어버린 부모드에게 기쁨을 주기 위한 것이라는 미명하에 인간복제를 시도하고 있다.
더군다나 이번 일을 주고하고 있는 브리지트 부와셀리(Brigitte Boisselier) 교수는 이번 일이 『철학적이며, 영원한 생명을 창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더욱 충격적이다.
이러한 인간의 일탈 앞에서 다시 한 번 우리는 인간이 무엇인가 라는 문제를 생각해 보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복제를 통한 단순한 과학적 호기심의 충족이 아니라 이러한 움직임에는 분명 현대를 사는 인간의 끝없는 오만의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과학 기술의 발달에 의해 인간이 많은 혜택과 편의를 제공받는 시대라고 하지만 현대사회는 물질적인 가치에 대한 집착 때문에 인간적인 가치를 소홀히 여기고 생명의 가치마저 경시하고 생명을 도구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으며, 이러한 경향은 일차적으로 잘못된 가치관으로 인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오늘날 인간은 이제 자신이 창조한 기술의 세계에서 먼저 창조주의 손길을 감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항상 자기 자신을 먼저 만나게 된다.
인간의 근본바탕에는 『할 수 있다』는 확신이 깔려있는데, 인간이 자신의 건설자가 되고, 또한 자기 역사의 건설자가 되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과 관련지어서 제기되는 문제가 바로 인간 복제의 시도이다.
그런데 학자들 간에는 이 인간복제 기술이 아직도 완성된 기술도 아니며 복제양 돌리에서처럼 성공률이 2%밖에는 되지 않으며, 기형아나 복제된 아기가 조기 사망할 확률도 있다고 밝히고 있으며, 인간복제의 상업화로 인간 인간 스스로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교회도 이러한 비윤리적인 유전자 조작을 막기 위해 다음과 같은 기준을 제시한다.
미래 세대에 대한 무책임한 조작, 과학 기술적 사고방식에만 의존하는 조작, 인간의 궁극적 목적을 고려하지 않는 현세주의적 상업적 조작, 인간의 개별적 존엄성, 자유로운 선택, 완전성, 주체성 보전에 위배되는 특정성격의 인간이나 계획된 양질의 인간을 얻기 위한 조작, 현 세대에 있어서 적극적 가치이나 다음 세대에서는 부정적으로 고려될 수 있는 가치를 지향하는 조작을 금지하고 있다.
사실 과학은 진리의 추구, 자연의 법칙의 이해, 서로 다른 체제들간의 관계를 파악하고 자연의 진리를 발견하는데 그 본연의 목적이 있다. 그 진리는 바로 하느님의 진리이다.
그러나 과학이 이 진리를 무시하고 자연을 변화시키고 재 계획하려 한다면 그것은 곧 하느님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고 그것은 곧 인류에 대한 재앙일 뿐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하느님 앞에 이러한 시행 착오를 반복해야 하는가?
슈바이쩌(A. Schweitzer) 박사는 『생명을 보존하고 증진하는 것은 선이고, 생명을 파괴하고 위협하는 것은 악이다』라고 하였다.
인간복제가 하느님께서 주신 그 생명의 진정한 의미를 보존하고 증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지금 우리는 역사의 어느 시대보다도 생명에 대한 겸손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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