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갗을 파고드는 듯 했던 입동의 바람에서 겨울다움이 가시고 가냘프지만 봄을 알리는 듯한 느낌이 감돈다. 유난히도 눈이 많았고, 30여년만의 추위도 겪은 겨울이었다. 제 집 앞의 눈을 쓰는 습관들이 없어져 꽁꽁 얼어붇은 보도를 걷다가 넘어져 다친 사람도 많고 그래서 정형외과는 때아닌 호황을 누렸다는데 보도의 눈을 치워주지 않는다고 나라를 원망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한숨 돌리고 있을 것이다. 내가 왜 내 점포 앞의 눈을 안치웠을까 하고 후회도 해 보고 언제부터 우리가 자기 집 앞의 눈도 치우지 않는 게으름뱅이가 되었나 하는 반성도 이제는 서서히 잊혀져 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큰 문제든 사소한 일이든 너무 쉽게 잊기 때문이다.
『용서하되 잊지는 말자』는 말이 있다. 사람들이 지난날에 당한 아프거나 굴욕적인 일들을 끝까지 용서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원한과 저주만이 가득찬 곳이 될 터이니까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용서에는 무척 인색하면서 잊는 것만은 아주 빠르다.
가톨릭신앙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용서이다. 『사람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용서하면 여러분의 하늘의 아버지께서도 여러분을 용서할 것입니다(마태오 6:14)』는 말씀처럼 용서란 자신을 위해서도 중요한 것이다.
용서란 자기 감정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뜻하는 것이고 스스로의 인격이 완성되는 도정이다. 남을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은 그 관용과 겸손이 몸에 밴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용서하기 전에 잊어버리고 만다. 한국전쟁의 자취가 50대 이상의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아픈 상처로 남아 있고, 이산가족의 슬픔이 우리 주위에 감돌고 있는데, 참혹한 전화의 잿더미 위에서 먹을 것을 찾아다니던 때의 기억들, 그 무서운 사상대결 속에서 부모를 혹은 친척을 잃은 사람들의 슬픔, 이 모두를 우리는 간단히 잊고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문을 호기심으로 혹은 통일의 신호로 기다리고 있다. 공산당의 만행을 용서하기 전에 잊어버린 것이다. 김정일의 방한에 대해 그를 범죄자로 처벌해달라는 고소가 제기되고 방문반대, 서명운동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 잊지도 않았고 또 용서도 못하겠다는 사람들도 꽤 많은 것 같다.
혹 50년도 넘은 전쟁이야기이니까 잊은 것이라고 한다면 삼풍백화점 참사, 성수대교 붕괴, 삼랑진 열차사고가 기억되고 있다면, 동두천 문산의 홍수 피해가 잊혀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꼭 같은 사고가 되풀이되는 것일까. 엊그제 파렴치한 범죄자로 몰려 감옥에 들어갔던 사람이 다시 민족의 운명을 결정하는 대열에 끼겠다고 나서는가.
자신들의 지난날을 쉽게 잊어버리는 사람들은 불행한 사람이다. 「역사에서 배우는 사람은 형명한 사람이고 체험으로 배우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고 하는데 지난날의 체험을 잊어버린 사람은 체험을 하고도 배우지 못한 사람이니 얼마나 어리석은가? 중국의 조선족 지방이나 동남아의 가난한 나라에 해외관광을 나선 사람들 가운데 돈 자랑하는 추악한 한국인들의 행태가 심상치않게 들려온다. 그러나 우리가 40여년전만 해도 꼭 같은 나라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런 행태를 보이겠는가. 벌써 잊어버린 것이다.
지난 설명절 때 고속도로 변에 쌓인 쓰레기가 작년보다 훨씬 늘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고속도로를 가진게 얼마나 되었으며 자가용으로 고향을 찾을 수 있게 된 것이 언제인가. 아직은 고속도로와 자가용에 감사할 시기이지 더럽히기에는 죄송한 생각이 들 때이다. 밤새도록 혹은 하루 온종일 콩나물 시루같은 기차를 타야만 고향을 찾을 수 있었던 게 바로 자기 자신이나 아버지 때의 일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체험으로도 못배운 백성이 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요즈음 경제의 위기를 걱정하는 말들이 많다. 그러나 위기는 경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에 있다. 체험으로도 못 배우고 지난날을 잊어버리는 사람들, 조금 살게 되었다고 3D업종은 기피하고 손쉽게 돈벌 생각만 하는 사람들, 눈이 와도 자기 집앞의 눈조차 쓸지 않고 나라에서 치워주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총체적으로 나타난 것이 오늘의 경제위기인 것이다. 회사야 어떻게 되든 자기들의 눈앞의 이익을 위해 파업하고 경제는 위기라는데 휴일이면 행락차량이 고속도로를 메우며 어른이고 아이고 장소를 가리지 않고 휴대폰을 터뜨리고, 잘못된 일은 모두 정치의 탓으로 돌리는 한 정부가 아무리 훌륭한 정책을 세워도 경제위기는 넘길 것 같지 않다. 인간은 살아있는 동안은 끊임없이 운직이고 일해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창세기의 말씀대로 얼굴에 땀이 흘러야 먹을 수가 있는게 아담의 후손인 인간이고 땀을 흘리는 동안만 행복할 수 있는게 하느님의 피조물인 인간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