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남북의 혈육들이 뜨거운 만남을 가졌다.
지난 2월 26일 오후 제3차 이산가족 상봉이 있었던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센트럴시티 밀레니엄홀. 남북의 이산가족들은 반세기만에 「어머니」「아버지」「아들아」「형님」을 목놓아 부르며 애절한 재회의 정을 나누었다.
곱던 얼굴에 주름이 잡히고 삼단 같던 검은 머리가 어느새 하얗게 반백이 됐어도 이산가족들은 피붙이를 한눈에 알아보고, 헤러짐을 강요당한 분단의 역사에 대한 원망과 만남의 기쁨으로 눈물바다를 이뤘다.
특히 이들 중 정지용 시인의 아들 구관(73)씨와 구인(68)씨의 상봉은 기자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향수」「조약돌」등의 작품을 남기고 한국전쟁 때 납북된 것으로 알려진 정지용 시인. 여기에 정시인이 행방불명된 후 아버지를 찾아나섰다 실종됐던 셋째 구인씨. 그가 이번에 남쪽의 큰 형 구관씨를 만나기 위해 50여년만에 북한측 이산가족으로 방문했던 것이다.
구관씨는 동생과 상봉한 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간절해진다고 감회를 밝혔다.
6·25가 터지던 그해 7월 『문안(4대문안)에 좀 들어갔다 오마』하고 집을 나간 정지용 시인은 지난 88년 해금될 때까지 월북시인으로 기록돼 있었다.
구관씨도 대부분 월북자 가족과 마찬가지로 괴롭고 힘든 삶에 쫓겨야 했다. 버젓한 곳에 취직할 수 없어 온갖 일을 다해야 했던 것은 물론이고 수시로 당국에 불려 다녔다.
『서러운 일도 많이 당했고 심지어 아버지와 각별했던 동료들이 외면할 때 가슴이 아팠다』고 털어놓은 구관씨는 앞으로 정지용 시인의 추모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자 양반 이 말은 꼭 써주었으면 좋겠어』라며 이 땅의 모든 이산가족들의 염원을 담은 한마디도 잊지 않았다.
내용인 즉 이산가족들이 생사를 확인하고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도록 남북 정부가 최대한 노력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리운 아버지』구관씨는 평생을 가슴에 묻어두었던 이 말을 동생과 상봉한 후 다시금 불렀다. 그에게 있어 아버지는 영원한 스승이자 삶의 전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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