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무리 성인군자라도 심신이 괴롭고 고달픈데 무슨 수로 웃는 낯을 보일 수 있으랴.
요즈음 명실공히 우리 한국천주교회의 상징이자 얼굴인 명동성당을 보면서 갖게되는 안타까운 심정이다. 명동성당의 잔뜩 화난 얼굴과 퉁퉁 볼메인 소리를 나도 교회조직의 일원으로서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 그냥 덮어주기에는 어쩐지 개운치가 않다.
70년대의 유신독재와 80년대의 신군부독재 체제를 거치면서 교회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벗이었고 그들을 위해 십자가에 죽음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그들의 보호자이자 대변인』으로서 『갈 곳 없는 약자들이 찾아가는 최후의 피난처』(2001년 2월 22일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성명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그랬다. 이것이 우리 명동성당의 믿음직스럽고도 자비로운 모습이었고 그래서 쫓기는 사람들, 저항하는 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적게는 너댓명, 많게는 수백, 수천명씩 무리를 지어 종마루 언덕에 지친 몸을 기대고 힘을 모았다.
날이면 날마다 이어지는 각종 집회와 시위의 와중에서 성당과 군중이 항상 웃는 낯으로 서로를 끌어안고 격려할 수만은 없었으리라는 것은 짐작이 가나 명동성당은 끈질기게 잘 참아주엇다. 그 덕에 명동성당은 일반 사람들에게는 「적어도 잡혀갈 염려는 없는 곳」으로 인식되었고 기득권세력에게는 그냥 두자니 한없이 성가시고 손을 보자니 사방으로 눈치가 보이는 골치아픈 곳」이 되었다. 그러다가 날벼락을 맞았다. 1995년 6월 6일 한국통신 노조원들을 해산시킨다는 명목으로 단행한 소위「경찰의 명동성당 난입 사건」이 그것이다. 이제 명동성당은 더 이상 성역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일로 해서 더 큰 타격을 입은 쪽은 실상 명동성당이 아니라 공권력을 투입한 김영삼 정권이었다. 고양이도 쥐가 마지막으로 도망할 구명은 남겨놓는 법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여론이 단연 우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명동성당 들머리는 여전히 더는 물러설 곳 없는 사람들로 붐볐다.
지난 해 12월 22일, 마침내 명동성당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수배자들이 머물러온 천막을 강제로 뜯어낸 것이다. 그리고 이틀 후에는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방해하고 성당 시설을 훼손하는 집회는 더 이상 허용할 수 없다』고 선언, 26일에는 『앞으로 성당 동의서가 첨부되지 않은 집회와 농성은 원천적으로 봉쇄해 달라』는 요청서를 관할 중부경찰서에 제출했다. 명동성당이 스스로 경찰병력을 동원해서 울타리를 친 것이다. 성당측은 『명동성당은 수년동안 이익단체들의 농성장으로 몸살을 앓아 왔는데 특히 12월 17일부터 22일까지 계속된 한국통신 노조의 천막농성 과정에서 일어난 불상사들(예를 들면 성탄 구유에 오줌을 누거나 여신자를 폭행하는 등)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2000년 12월 25일, 27일자 한국일보). 화가 날만도 하다. 한마디로 말하면 왜 그들의 이익추구를 위한 투쟁에 우리가 희생되어야 하느냐는 불만이다. 거 이상은 희생될 수 없다는 결의다.
다시 말한다. 내 심신이 괴로운데 어찌 남생각까지 하겠는가. 맞다. 옳은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내 심신이 괴로워도 웃는 얼굴로 남을 돌보아야 하는 그야말로 특수 임무를 띤 사람들이란 거다.
좀 더 분명히 말할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말이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 오라』(마태오 11,28)고 그 분을 따라 복창해야 할 사람들인 걸 어쩌랴.
문제는 또 하나 있다. 각 교구와 본당들이 저마다 「새 양 찾기」, 「잃은 양 찾기」운동으로 「모셔오기」에 열을 올리는데 하물며 명동성당에 제 발로 찾아온 사람을 어떻게 내쫓을 수 있느냐는 거다. 최근 2월 13일 아침에도 국가보안법 수배자들이 성당 어귀에 설치한 모형 감옥 두 개를 강제 철거했다. 갈수록 태산이다. 천주교 신자는 아군이요, 나머지는 적군인가?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더군다나 거기 모이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정치권력자들이나 재벌들이 명동성당에서 천막치고 농성하는 것을 보았는가? 그들은 명동에 모이지 않는다. 명동성당 들머리엔 그들만의 자리가 없는 사람, 더는 갈 곳도 숨을 곳도 없는 사람들만 모인다. 언젠가처럼 명동성당이 쫓아내면 그들은 성공회 마당으로 가고 조계사로 간다.
결코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나도 80년대에 본당신부로서 우리 성당을 집회 장소로 여러 차례 내 주면서 속상했던 일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마당에는 물론 성당 안에까지 담배꽁초나 휴지조각이 즐비했고 건물벽마다 오줌자국이 선명했다. 심지어 빨래줄에 걸어놓은 내 속옷까지 없어졌다. 신자들은 미사참례도 불편하다고 아우성이었다.
명동성당에 호소한다. 그러나, 그래도 내 쫓을 일은 아니다. 그들을 내쫓고 난 뒤 텅빈 마당을 누구를 초대해서 채우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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