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라면 질색하는 필자와 텔레비전이라면 안 볼수록 좋다는 신념을 지닌 아내 덕분에 우리 가족에게는‘온가족이 함께 즐기는’이란 수식어가 붙을 만한 특별한 프로그램이나 취미활동이 없었다. 그러다 근래 그야말로 온가족이 손꼽아 기다리는 프로그램이 생겼다. 바로 한 공중파 방송이 일요일 저녁시간대에 방영하는 ‘개그콘서트’라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가 하는 시간만큼은 아이들도 엄마아빠 눈치 안보고 마음 놓고 TV 앞에 둘러앉는다. 텔레비전을 켜면 뉴스밖에 안 보는 아빠와 TV라면 정색을 하는 엄마 사이에서 만화영화도 마음대로 못 보던 아이들도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된 모양이어서 이 시간만 되면 아빠가 보던 뉴스 채널도 마음대로 돌려댄다.
우리 가족이 특별히 재미있어 하는 것은 ‘개콘’에서도 한창 인기를 얻고 있는 ‘감수성(感受城)’이라는 코너다. 도입부를 “북쪽의 오랑캐가 쳐들어와 평양성, 북한산성, 남한산성이 함락되고 마지막 남은 감수성. 이 감수성의 장수들은 감수성이 풍부했으니….”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코너인데, 평소 크게 웃는 일이 없는 필자도 이 시간만큼은 정신 나간 듯(?)이 웃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병자호란으로 추정되는 시기, 마지막 남은 감수성(感受城)에서 권토중래를 꾀하는 감수성(感受性)이 풍부한 왕과 신하들이 난관에 부딪히는 에피소드를 그린 이 코너는, 출연자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나 행동을 하면 감성을 자극하는 음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이면에 감춰진 사연이 드러나면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이야기구조를 지니고 있다. 별생각 없이 내뱉은 말에 상대방이 마음 상해하면 상대의 감정을 추슬러주며 웃음을 이끌어내는 식이다. 이 코너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은 평소 우리가 생각지 못하고 쉽게 지나쳤던 일들 속에 감춰진 진실을 해학과 풍자로 추려내, 보는 이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코너의 제목인 ‘감수성(感受城)’으로 희화화된 감수성(感受性)이란 말은 내외계의 자극변화를 수용하는 적극적인 자세 내지 능력을 말한다. 감수성이 풍부하다거나 청년 같은 감수성을 지녔다 등과 같은 말처럼 사람의 성격을 말할 때도 쓰이고, 대중적 감수성, 문화적 감수성, 인권 감수성 등과 같이 어떤 흐름이나 트렌드를 말할 때도 자주 쓰인다.
이렇게 본다면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적 감수성을 지니는 게 마땅할 것이다. 하느님이신 분이 인간의 모습으로 육화(肉化)하셔서 이 땅에 오신 것도 결국은 인간적 감수성으로 인류에게 당신의 지극하신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따라서 그리스도의 눈으로, 곧 예수님의 생각과 관점으로 세상에 다가서려 노력할 때 그리스도적 감수성이 풍부해지리란 점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복음을 가까이 하고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진리대로 살아가려 노력할 때만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지지 않고 그리스도적 감수성이 넘쳐나는 주님의 제자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주님을 닮고자 하는 마음, 바로 그리스도적 감수성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값지고 은혜로운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삶에 있어서 어떠한 형태로든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것이 필수불가결한 것이라고 할 때 타인에 대한 감수성이 부각될 때가 적지 않다. 김진경 시인은 “타인에 대한 감수성이 결국 우리 자신을 구원할 것”이라고 했다. 이웃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 속에서 더불어 살려면 건강한 감수성에서 나온 열린 감각과 따뜻한 마음이 필요하다.
하느님을 향해 열려있는 그리스도적 감수성에 주님 보시기 아름다운 세상을 빚어내고 맞이할 희망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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