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리아 단장의 인솔 하에 주임신부님과 레지오 단원 형제자매들이 3대에 나눠 탄 전세버스 5월 21일 8시30분 성당을 출발하여 논산 부여를 지나, 서천 수암(水庵)공소에 11시 쯤 도착했다. 공소에는 미리 서천본당에서 마중 나온 사목회장님 일행이 계셨다.
이날의 목적지 천방산(千房山) 정상까지는 콘크리트로 포장된 900m 정도의 가파른 산길이었다. 이 길을 따라 대부분의 교우들은 푸른 오월의 화창한 날씨에 녹음을 즐기며 걸어 올랐고, 걷기가 불편한 연로(年老)하신 교우들은 서천본당에서 제공한 승합차 2대를 이용하여 정상까지 올라갔다. 그리 높은 산은 아니었지만, 정상에 올라가니 평평하게 정리된 빈 터가 있었다. 그곳에서 서천본당의 주임신부님과 수녀님 그리고 전 사목회장 네 분, 우리본당 보좌신부님의 부친 등 모두 여덟 분이 우리를 영접했다. 서천본당은 우리본당 보좌신부님의 출신 본당이며, 서천본당 주임신부님은 우리 주임신부님께서 신학대학 총장으로 계실 때 교수로 계셨던 특별한 관계이다.
조선후기 10여 차례의 천주교 박해 때 많은 신자들은 관권(官權)이 닿지 않는 깊은 산속으로 피신하였는데 그 중 한 곳이 바로 천방산 이다. 이 천방산은 1866년 흥선대원군이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기위해 러시아의 부추김을 받아 마리 다블뤼(Daveluy 한국명 安敦伊)주교와 황석두(黃錫斗) 루카를 비롯한 8,000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새남터, 서소문, 양화진, 서천, 갈메못 등에서 참수(斬首)당 한 병인박해(丙寅迫害)때 신앙을 지키다 순교한 선조들의 줄 무덤이 있는 곳으로 구전(口傳)되어 오는 곳이다. 우리 신부님은 천방산 줄 무덤을 찾아내어 순교성지로 정화하려고 노력하시는 서천본당 주임신부님을 격려하시고자 본당 레지오 단원들과 함께 이곳을 찾아 온 것이다.
초기 한국교회는 오랫동안 뿌리 내려 있던 유교문화의 양반사회에서 천주교의 평등사회의 충돌과 군주(君主)와 부모의 권위를 상대적으로 절하(切下)시키는 하느님의 절대(絶大)신화의 천주교 신앙이 군주의 탄압을 가져왔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제대로 된 교리서조차 없이 중국에 사신으로 갔던 이승훈의 입교(1784년)로 전교(傳敎)되기 시작한 천주교가 자신의 목숨 까지도 바쳐가며 지켜야 할 만큼의 신앙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이렇게 신비로운 천주교의 순교신앙이 머물러있다고 느껴지는 산상에서 우리 신부님과 서천본당 주임신부님이 집전하는 미사는 평소 본당에서의 미사와는 다르게 순교신앙의 특별한 의미를 느끼게 해주었다. 우리 신부님께서 정성으로 봉헌한 헌금 전액을 성지개발에 써달라며 서천본당 신부님께 쾌척(快擲)하시어 우리 모두가 함께 기뻐했다.
산상미사가 끝나고 그늘을 찾아 끼리끼리 모여 앉아 준비해 간 점심을 나누어 먹으면서 반주(飯酒)로 서천본당 신부님께서 가져오신 서천의 유명한 민속주, 앉은뱅이 술, 소곡 주를 즐겼다. 그러고 나서 천방산 정상에서 최양업 신부님께서 관가(官家)의 감시 눈을 피해 숨어서 전교 편지를 쓰셨던 곳을 구전되어 오는 곳인 ‘산막골’ 계곡을 따라 생긴 산길을 걸어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니 높은 산으로 앞이 막히는 골짜기에 이르렀다. 한 시간 반 정도의 아름다운 산골길을 교우들과 담소를 나누며 열심히 걸었다. 그리고 모두 한자리에 모여 성지개발에 관한 서천본당 주임신부님의 말씀을 들었다. 신부님의 다부진 성지 개발의지에 감명 받았지만 재정적인 것을 비롯한 앞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많은 어려운 여건들이 예상되어 안타까웠다. 마지막을 서천본당 주임신부님의 축복기도로 순례의 일정을 마쳤다.
마음속으로 신부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성지(聖地)개발사업의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드렸고, 도착해서부터 떠날 때까지 우리를 돌봐 주신 서천본당의 신부님과 수녀님, 전 현임 사목회장님들께 고마움을 전했다.
그리고 환송을 받으며 대기하고 있던 버스를 타고 본당까지 오면서 목숨을 바치는 순교신앙은 어느 경지에서 가능할까? 나는 속으로 곱씹어 생각했다. 갈 때보다 훨씬 시간이 단축되어 생각의 시간도 짧았다. 참으로 뜻있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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