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말이면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저 남쪽땅 제주에서부터 개나리 소식이 전해질 것이라고 한다. 한결 마음이 따뜻해지는 듯 하다.
그러나 근자에 들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들려오는 우울한 소식들은 이런 봄기운에 찬물을 끼얹기에 충분했다.
대우자동차의 정리해고 조치와 사원들의 생존을 건 투쟁, 전교 수석을 다투던 여중생의 원조교제, 인터넷 중독증에 걸린 중학생의 살인 등등.
거리의 주검들
그러나 우리의 가슴을 더더욱 아프게 한 것은 한 노숙자의 죽음에 관한 기사였다. 경찰 조사에 의하면 죽은 이는 김모씨로 결혼과 조경사업에 잇따라 실패한 뒤 3년전 가출, 노숙생활을 해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결국 싸늘한 시신이 되어 전북 익산에 사는 8순 노모에게로 돌아갔다. 술에 찌들고 허기진 그의 육신은 막바지 겨울 추위를 견뎌내기가 힘겨웠던 것 같다.
그러나 그 기사를 보는 이의 마음을 더욱 착잡하게 만든 것은 이미 사망한지 보름이 지났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에서 어느 누구도 그의 주검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과 그의 동생이 말한 『가난했던 기억밖에 없다』는 체념 가득한 넋두리였다.
몇 년전 노숙체험을 감행한(?) 사제들을 취재했던 적이 있다. 대전역 주변을 서성이며 노숙자들의 동태를 살피는 것도 간접 취재중 하나였다. 며칠에 불과한 취재였지만 이른 아침, 담배 한 개피에 불을 붙이며 지난 밤도 무사히 견딜 수 있었음에 안도의 숨을 내쉬는 노숙자들을 보면서 측은한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던 기억이 있다.
노숙자와 관련된 관(官)과 민(民)의 노력이 벌써 4년째 접어들고 있지만 사정은 별로 나아진 것이 없어보인다. 물론 그동안 적지 않은 노숙자들이 임시보호소 등에 수용돼 이슬은 피할 수 있게 됐지만 이들은 언제 다시 거리로 내몰릴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에 있다.
경찰 집계에 따르면 지난 1999년부터 지금까지 서울에서 숨진 노숙자는 225명에 달한다. 보호시설 수용인원을 포함한 서울 전체 노숙자 3738명의 5%가 넘는 숫자다. 특히 올해부터 이들에 대한 한시적 생활보호제도가 중단돼 의료구호가 끊기면서 올들어서만 14명이 숨진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에서만 그렇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노숙자들의 주검은 늘어갈 것이 분명하다.
노숙자들은 죽어서 또 한번 버림받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분확인이 안되는 노숙자들은 행정청에 의해 행려자로 분류돼 영안실에 방치된 끝에 화장장에서 한줌의 재로 남게된다. 서울 중구청은 지난해 이렇게 20여명의 시신을 화장터로 넘겼다고 밝혔다.
신원이 파악되더라도 가족들이 시신인수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수백만원에 달하는 영안실, 장례비용 때문에 가족들이 인수를 거부한다』고 경찰관계자들은 밝히고 있다.
지금까지의 정책은 노숙자를 공공에 해를 끼치는, 혹은 도시미관을 해치는, 혹은 일하지 않고 놀고 먹는 몰염치한 사람으로 간주하고 이들을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데만 몰두하지 않았는가 반성해볼 일이다.
최소한의 생존권이라도
노숙자들에게도 인간으로서 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이 권리는 분명히 있다. 소위 「노숙자들의 권리」란 상시적으로 눈과 비를 피할 수 있는 하룻밤의 잠자리를 제공받고, 씻고 싶을 때 씻고 아플 때 찾아가면 언제나 최소한의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고 위독할땐 생명유지를 위해 적절히 의뢰, 후송될 수 있도록 해주는 현장서비스 제공 체계일 것이다.
노숙자 문제에 있어서 지금과 같은 시각이 바뀌지 않고서는 이들의 주검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계속해서 늘어갈 것이다. 민간단체의 뜻과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당국의 보다 적극적인 의지와 성의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요즘같이 어수선한 세상, 정리해고의 위험속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소시민들도 바로 내 경우일 수 있는 가슴아픈 현실로 노숙자 문제에 공감하고 혜안을 찾기 위해 마음을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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