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청소년들의 단편적인 모습을 보면 한편으로는 행복해 보이고 한편으로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어느 세대나 이러한 면은 공유할 테지만, 맹목적인 헌신과 애정과 관심을 쏟아낼 대상을 많이 갖고 있다는 면에서 보면 그들의 앞서간 세대보다 행복함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러한 대상의 공리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굳이 따져보지 않으며, 의에 대한 연대의식보다는 공감(?)한다는 연대의식만으로 잘 등지기도 하고 잘 다투는 걸 보면 우리 시각으로는 불행해 보인다.
이런 청소년들에게 이미 그들에 의해 폐기 처분된 가치 즉, 효, 예, 의 등 우리가 가치있다고 하는 것들은 이미 그들에 의해 한편으로 밀려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이미 밀려나 있거나 폐기처분된 가치를 부둥켜 안고 살아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버거운 일이며, 용기를 내어 주장할 슬픈 현실로 치닫고 있다고 느껴진다.
일선 업무에서 물러나 사색의 공간으로 자리를 옮겨가는 선배 신부님께 통과의례로 조촐한 행사를 후배들이 마련한 것은 예와 효를 우리 안에 끌어들이기 위한 작은 자리매김의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역사를 오래 갖고 있는 종교사로 보더라도 천주교는 내부적으로 경직성을 담보할 가능성이 많았으나 자기 비판과 자기 조율, 자기책임을 통해 이러한 경직성을 슬기롭게 극복해 왔다고 본다.
이를 동양적인 가치로 보면 예, 의, 효 등의 가치가 내부에 존재하고 있었다 할 것이다. 이러한 가치는 모두 질서와 통합의 가치로서 앞으로도 사아 숨쉬어야 할 가치이기에 작은 몸부림이나마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한번 사제는 영원한 사제이기에 은퇴란 단어가 적용될 수 없으며, 굳이 일선에서 물러나 또다른 구도의 길을 가시는 선배신부님께 후배들이 자리를 마련함은 예와 효를 갖추기 위함이며, 내부적으로는 아우러지기 위한 행동으로 볼 수 있다.
그간 시대적 흐름 속에서 인간의 가치와 감정의 둥지에서 살아가는 제한된 모습에서 갈등과 혹은 해석의 차이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이러한 노력으로 「함께」하는 공동체를 이룰 수 있고 「~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계기를 희구하는 마음으로 조촐한 자리가 있게된 것이다.
젊은 사제직을 꿈꾸고 살아있는 믿음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낚고 있는 것은 「효」이며, 「예」이며, 「의」입니다. 이것들이 가정과 사회,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만들어 낸 많은 조직들이 평화를 이루게 하고 바로 그 안에 믿음이 살아 숨쉴 수 있다고 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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