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8월 3일에 나는 「물권시(物權詩)」라는 시를 썼고, 이 시는 문예지 『시와 의식』(1990년 겨울호)에 발표됐다. 그리고나서 이 시는 1995년에 나온 나의 여섯 번째 시집 『묵극』에 다시 실렸다.
이로써 나는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세계 만방을 향해서 실질적으로 ‘물권선언’을 한 셈이다. 한국에서 시 한 편 발표했다고 그것이 곧 전 세계를 향한 선언이 되는 것일까? 그렇다. 나는 그렇다고 확실히 말하겠다. 지구상 어느 곳에서건 한 번 일어난 일은 그 사실이 영원히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모든 일에는 절차와 형식이 있는 법이다. 시 한 편 발표한 것이 이른바 그 ‘물권’이라는 것을 세계에 선포하는 충분한 절차로 볼 수가 있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나도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대응하지 못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 ‘물권 선언’의 합당한 절차인지, 아직 거기까지 연구해보지는 못했다. 그보다는 이제까지 들어보지도 못한 ‘물권 선언’이 어떤 것인지, 그것부터 말씀드리는 것이 우선 여기에서 해야 할 일이라 여겨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때 발표한 그 시를 여기 전부 인용하는 것이 제일 확실한 방법이겠지만, 시가 짧지 않기 때문에 전편을 인용하는 것은 실제적인 방법이 아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그 시의 내용을 내가 설명 소개할까 한다.
작자(나)는 물권(物權)이란 말이 사전에도 나와 있는지 궁금해서 찾아 봤더니 있기는 있는데 놀랍게도 저자가 생각하는 ‘물권’의 개념과는 정반대의 개념을 나타내는 ‘물권’만 있고 저자가 생각하는 ‘물권’이란 말은 아예 있지도 않다. 그러니까 ‘물권’ 하면 ‘소유권’, 지상권(地上權), 선취득권(先取得權), 저당권(抵當權), 광업권(鑛業權), 어업권(漁業權) 등 등 이런 것이다. ‘물권’이라 하면 사람이 어떻게 물질을 독점 지배할 수 있는가 하는 그 권리이지 물질 자체가 갖는 권리로서의 ‘물권’은 아닌 것이다.
나는 절실히 느꼈다, ‘사태가 심각하구나!’ 물질이 갖는 권리로서의 ‘물권’은 말조차도 없구나!
시의 끝에 가서 저자(나)는 ‘물권’에 대한 새로운 정의(定義)를 내린다.
물권: 물질도 스스로의 영묘한 얼개와 내용을 주장할 수 있는 권리. 더 나아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이것이 곧 ‘물권선언’의 내용이 되는 것이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일을 되풀이하는 꼴이 되지만,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 인간들의 무지와 몰지각과 횡포가 정말 도를 넘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 인간이 물질을 너무 학대하고 있다.
인간의 물질에 대한 학대는 끝없는 탐욕 때문이다. 돈을 벌고 봐야 한다. 돈만 벌면 그만이다. 남이야 어떻게 됐든, 그것은 알바 아니다… 이런 동기에서 불량식품이 넘친다. 유행이 어지럽게 바뀌고, 유행이 바뀔 때마다 유행에서 뒤떨어진 물건들은 내팽개쳐진다.
버리면 버림을 당하고, 밟으면 밟히고 하면서도 무표정하게 아무 불평이 없는 물질을 보고서, 이러다가는 큰 일 나겠다 싶어 나는 ‘물질고아원’을 차리고, 버림 받은 물질들을 모아, 위로와 속죄를 겸해서 안식처를 주었다.
고마움을 모르면 사람이라 할 수가 없다. 사람이라 하더라도 최하급에 속하는 사람임을 면할 수가 없다. 그것은 사람의 품격을 송두리째 팽개치는 행위이다.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자연환경도 물질이다. 자연 환경이 아름답다고 예찬은 하면서 한편으로는 오염된 산업폐기물을 마구 버리니, 우리 사람들은 여기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람들이 겸허하게 ‘물권’을 인정하고 물질 앞에서 겸허해져야 한다. 이러한 나의 생각에 공감하시는 분도 적지는 않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세상에 별의 별 선언은 많은데 왜 물권선언만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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