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내가 살고 있는 집과 마을이 사라지거나, 누군가에 의해 거주지를 강제 이전한다는 통보를 받는다면 우리는 어떠한 반응을 보일까?
아마 기자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을 발생하게 만든 이를 찾아가 그 이유를 조목조목 따져 물을 것이다. 자신의 생활권을 타인에 의해 침해받는 것을 부당하다고 여기기 때문일 터.
바로 지금 삶의 터전에서 내몰릴 상황을 눈앞에 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제주 해군기지 건설 대상 부지인 강정마을 근처에 살고 있는 자연 생태계 구성원들이다. 이대로 공사가 강행된다면 그들의 서식지가 사라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하지만 이들은 왜 자신들에게 이러한 상황이 닥칠 수밖에 없는지 따져 물을 방법이 없다. 말을 할 수 없는 개체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생태계의 위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가 경제적 이익을 위해 그들의 터전을 깎고, 막고, 빼앗는 동안 아무런 대응을 할 수 없었다.
역지사지, 처지를 서로 바꾸어 생각한다는 뜻으로 상대방의 처지를 생각해 봄을 이르는 말이다. 인간의 이기 앞에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생태계 구성원들의 처지를 나에게 빗대어 생각해보자. 내가 그들이라면 과연 이 상황을 참아낼 수 있을까?
생태계를 이루는 구성원들, 즉 생명 역시 존중받아야 할 대상이다. 복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0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를 통해 “평화로운 사회는 결코 생명에 대한 존중을 소홀히 할 수 없으며 생명 존중이 바로 모든 피조물의 보전이라는 사실을 경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생명 존중은 전문가들만의 몫이 아니다. 주님의 피조물을 책임지고 관리할 권한을 부여받은 우리의 몫이다.
역지사지를 통해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관심을 갖는 것이 바로 생명 존중에 소중한 첫 걸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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