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없는 말(言)이 천리(千里)를 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천리’면 대단히 먼 거리입니다. 그렇게 멀기에 몇 날 몇 달 걸려서 갔을 것입니다. 가는 길에 이 말이 붙고, 저 말이 떨어져 나가서 어쩌면 처음 말하고 전혀 다른 말이 도착했을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곳의 소식을 저곳에 있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전해주는 전문분야가 나타났습니다. 그것을 두고 우리는 ‘언론’ 혹은 ‘대중매체’라고 부릅니다. 활자매체 혹은 신문이 등장했습니다. 그러다가 사람들은 라디오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아무리 먼 곳이라도 이제 말은 단숨에 도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천리가 아니라 수만리 먼 곳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를 직접 듣게 되었고, 그만큼 소식을 빨리, 생생하게 주고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과학기술은 영상까지 덧붙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SNS가 다양하게 발달하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새로운 미디어시대를 맞이했습니다.
활자화된 정보건, 방송을 통한 정보건, 정보전달은 ‘공동선을 위한 것’(간추린 사회교리 415항)이어야 합니다. 공동선은 ‘집단이든 구성원 개인이든 자기완성을 더욱 충만하고 더욱 용이하게 추구하도록 하는 사회생활 조건의 총화’(사목헌장 26항)입니다. ‘사회생활 조건의 총화’는 구체적으로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종교 따위의 여러 분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언론을 통한 정치나 경제 분야의 정보들이 과연 공동선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특정집단의 이데올로기나 이익을 꾀하는 것인지, 혹은 정치적 통제의 수단으로 동원된 것은 아닌지, 혹은 집단 간의 경쟁과 알력의 산물은 아닌지 따져봐야 합니다.(간추린 사회교리 416항 참조) 우리는 대중 매체를 통한 정보 전달이 공동선(모든 인간의 존엄함과 기본권 실현)을 위해서가 아니라, 특정 정치집단의 권력 유지와 그와 유착한 경제 집단의 이익 보호를 위해 악용된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사회는 ‘진실과 자유와 정의와 연대 의식에 근거한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가(가톨릭교회 교리서 2494항) 있음에도 말입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경험을 선택적으로 망각하면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할 수 있습니다.
다음의 교회 가르침은 오늘날 우리의 대중매체 환경을 떠올리게 합니다.
‘정보의 객관성에 대한 권리를 온전히 행사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 가운데, 특별히 주목해야 하는 것은 소수의 사람이나 집단들이 조종하고 있는 뉴스 미디어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에, 정치 활동과 금융 정보 기관들의 유착까지 더해지면 이는 전체 민주주의 제도에 위험한 결과를 미친다.’(간추린 사회교리 414항)
예를 들어 ‘한-미 자유무역협정’,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4대강 사업’, 그리고 ‘복지’ 따위에 관한 언론의 정보들이 ‘진실과 자유와 정의와 연대 의식에 근거한’ 정보들인지 돌아볼 일입니다. 정치 공동체의 상황과 사실들, 제시된 문제 해결책을 모르고서는 민주적 참여가 불가능하고, 시민의 참여가 없는 민주주의는 알맹이 없는 껍데기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너무 복잡하고 방대하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전문가들의 몫이라는 이유만으로 시민의 정보의 객관성에 대한 권리를 유보하고 공동선을 위한 언론의 정보전달의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414항 참조)
교회는 대중매체(정보의 내용과 전달방법 뿐만 아니라, 누가 정보를 많이 갖게 될 것이며 누가 적게 갖게 될 것인가에 영향을 주는 정책 문제)에도 도덕적 가치들과 원리들을 적용합니다.
‘근본적인 윤리 원칙의 첫 번째는 인간과 인간 공동체가 대중 매체 활용의 목적이며 척도라는 것이다. 두 번째 원칙은 인간의 선익은 그들이 속한 공동체의 공동선과 별도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시민들이 대중 매체 정책에 관한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참여는 공개적이어야 하며, 대중 매체가 돈벌이가 되는 사업일 때 특정 이익 집단을 위해 잘못 이용되지 않고 진정 민의를 대표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간추린 사회교리 416항)
국내의 몇 신문사가 연말이 되면 종합 편성 텔레비전을 출범시킨다고 합니다. “복잡한 사회생활 영역에서 정보와 의사소통을 위한 여러 형태의 도구들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하면서 실질적인 다원주의를 보장”해야 하지만, “적절한 법률을 통해서 이들 도구를 공평하게 소유하고 사용할 수 있는 여건”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습니다.(414항) 대중매체를 ‘공동선을 위한 정보전달’ 대신에 ‘돈벌이가 되는 사업’으로, 혹은 ‘민의를 대표하는’ 대신에 ‘특정 이익 집단을 위한’ 것쯤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지 논란이 많습니다. 대중매체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은 교회언론에도 똑 같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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