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트던가 밀른이던가 아니면 가디너던가, 필자의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자기는 중요한 우편물은 절대 남에게 부쳐달라고 맡기는 일이 없다고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사람은 사람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사람의 속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꼭 부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일 까지는 하나도 어렵지 않다. 그런데 만에 하나 깜박하고 부치지 않는 일이 생긴다면 큰 낭패인데, 그러한 큰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약속을 어긴 사람을 단박에 신용불량자로 단정하는 것도 잘 하는 일은 아니다. 보통 사람의 능력이 대개 어느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그런 사람에게 매번 완벽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나폴레옹이 자기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말은 없다고 호언했다고 하지만, 그는 슨트 헬레나 섬에서 매우 비참한 상황에서 죽었다. 아무리 천재적인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도 인생을 끝까지 전부 자기 뜻대로 다스릴 수는 없다. 마음이 간절하더라도 육신이 말을 안 듣거나, 몸엔 기운이 넘치는데 마음이 동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유한성(有限性)’, 이것이 인간이 지니고 태어나는 숙명 중에서 첫째 조항이다.
그렇기는 하나 젊어서 기운이 왕성할 때 사람이 ‘완벽’을 꿈꾸어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는 하다. 몸은 쾌조(快調)라 거의 날 수도 있을 듯싶고, 정신 역시 그러한 상태여서 무슨 일을 해도 뜻을 이루고야 만다. 그래도 역시 ‘완벽’이란 인간에게는 허망한 꿈이다. 그렇다면 ‘완벽’은 인간에게 도대체 무엇인가? 왜 예수님은 너희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처럼 완벽하게 되어라’ 하고 말씀하시는 걸까?
사람은 ‘완벽’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완벽’을 바라보며 걸어갈 수는 있다. 한 걸음 한 걸음 완벽 쪽으로 걸어가는 것이 인생이다. 남과 한 약속 중에서 약속을 어기는 횟수를 한 번 이라도 줄이는 것이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함부로 약속을 하지 않는 신중함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더러 성인(聖人)의 전기를 보면, 먼저 감명을 받는 것이 그분들의 그 끝없는 겸허(謙虛)다. 십자가의 성요한도 겸허를 매우 강조했는데, T.S.엘리엇도 이러한 생각을 본받아 그의 장시 「이스트 코우커 (East Coker)」에서,‘겸허는 끝이 없다 (humility is endless)’ 고 읊고 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가난’의 사상(思想)도 ‘겸허’의 사상과 같은 맥락이 아닐까. 그런데 이러한 성현(聖賢)들의 공통된 ‘겸허’의 사상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사람은 ‘완벽’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실감(實感)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인간이 ‘완벽’에서 멀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기 위해서는 역시 나이를 먹어봐야 한다. 손힘이 없어 물건을 놓을 때 탕 소리 나기가 일쑤다.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물을 따를 때 엎지르기가 쉽다. 걸음은 조심해서 가만가만 걸어야 한다. 건강 체크를 위해서 몇 달에 한 번씩 꼭 병원엘 가야하고, 혈압약은 매일 꼭 챙겨 먹어야 한다. 심장의 혈관이 막힐 위험이 있어 이른바 ‘스텐트’라는 금속 파이프를 끼워 넣은 상태다. 무릎 관절은 아프고 눈은 흐리고, 이의 반은 틀니이고, 기억력이 깜박이는 것은 이제 당연한 일상이 되어 있다. 이러한 나의 불완전성을 철저히 인식하는 일이 요즈음의 나의 생활의 기술이다.
자기가 완벽에서 멀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면 자연 남의 잘못에 대해서 관대해질 수밖에 없다. 남을 탓하기에 앞서 인간 본래의 모습을 딱하게 여기는 마음이 일기 때문이다.
인간은 ‘완벽’과의 관계에서 따질 일이 아니다. 인간이야말로 (특히 노년이야말로) 불완전의 대명사다. ‘완벽’은 하느님의 척도(尺度)이고, 불완전(不完全)은 인간의 실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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