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가톨릭신문에서 『천주교 시자가 더해』라는 제하의 칼럼을 읽엇다.
내용인 즉슨 천주교신자들도 사회생활의 현장에서 막돼먹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우리 천주교인 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우리 나라 사람들의 신앙심이 매우 유별나다는 점을 새삼 되새겼다.
우리 천주교의 순교 역사를 통해 나타난 단단하고도 숭고한 신앙은 세계가 경탄하는 바이다.
쉬는 신자들이 많아 문제라지만 이국이나 유럽에 비하면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해야할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성당에 가보면 고작 대여섯면이 미사를 참례하는 광경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외국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새벽미사도 있으며 신자수가 많은 성당에서는 새벽미사 시간에도 성당 안이 꽉 찬다.
한편 개신교 신자들의 열성은 천주교 신자들을 압도한다.
또 비구(比丘)중심의 우리 불교는 다른 많은 나라들과 비교할 때 오랫동안 순수성을 간직해오고 있다.
유교는 어떤가, 성균관측이 중국에 가서 석전제(釋奠祭) 등의 제례를 가르쳐주고 있을 정도다.
천주교와 개신교, 불교, 유교 이 모두가 외래종교이지만 신앙의 열기, 그리고 근본주의적이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오리지널」을 지키려는 순수성은 본토를 무색케하고도 남는다. 게다가 각각 다른 시기, 다른 경로를 통해 이 땅에 들러온 외래종교들은 단 한차례의 유혈 종교전쟁 없이 사이좋게 공존해오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을 세계 종교의 기적이라고까지 말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사실을 근거로 한반도가 세계문명의 중심이 될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여기에다 더욱 놀라운 일,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또 있다. 이처럼 종교에 대한 열성들은 대단하지만 막상 생활태도는 그 열성과는 반대라는 점이다. 사회적 규범과 도덕, 예의염치가 이렇게 헌신짝 취급받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다른 OECD국가들과 비교할때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요즘 조국에 염증을 느끼고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려는 이민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나라의 공교육 파탄이 중요한 원인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한국탈출」의 동기를 좀더 포괄적으로 말하자면 「교육의 문제를 포함한 사회적 스트레스」이다. 「같은 밥먹고 살면서 굳이 매일 같이 골치아프게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야 하는가. 좀더 인간답게 살수 없을까」라는 회의를 갖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배경에는 사회의 급격한 변화, 그리고 가치관의 혼란이 있고 그 혼란의 중심에는 「돈」또는 「물질」이 자리잡고 있다. 어른이고 아이고, 사회지도층이고 서민이고 그같은 세태에 물들어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른이 그러니까 아이들이 따라학 사회지도층이 그러니까 서민들이 물드는 것이다.
같은 이치로 신앙인들이 비신앙인들 보다 더 한 측면은 없을까.
「모든 천주교 신자가 더하다」는 것은 아니다. 실은 이 시간에도 천주교 뿐 아니라 여러 종교에서 많은 이들이 묵묵히 봉사와 희생의 길을 가고 있고 이들 때문에 그나마 우리 사회의 상당부분이 정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평균적인 결과로 볼 때 「신자가 더하다」는 자책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 한 신부님이 「바닷물의 염분은 3%뿐」이라면서 「우리 신자들이 전체인구 중 그 수는 적더라도 신자답게 행동할 때 사회 전체에 소금과 같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론할 때 새삼 스스로 물었다.
『전체인구 중 여러 종교인들을 합하면 4%가 아니라 그 열배도 훨씬 넘는다. 또 경제규모나 교육수준도 대단하다. 그런데에 비하면 사회의 혼탁도는 반비례하는 것인가 아닌가』
결국 대부분의 종교인들, 그리고 신자들은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 다르고 울타리 밖에서 다른」태도로 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그리스도교 신자들 중에는 교히 울타리안 에서는 우리만큼 열성을 보이지 않지만 이웃과의 공동체 생활 현장에서는 우리보다 훨씬 더 예수의 가르침을 실행하는 이들이 많다.
「주여, 주여」한다고 해서 저마다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또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중 으뜸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들 사이의 사랑을 통해서 하느님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확인한다.
그렇다면, 혹시 우리는 덩치만 웃자라고 정신연령은 낮은 미숙아와 같은 신앙인은 아닐까 울타리를 넘어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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